폭설 외 1편

  

폭설

  

  갇혀 지낸 마음이 불러냈으리라
  깊어가는 가을 한켠에서 모처럼
  가볍게 부풀었으리라
  어른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며 오래오래
  붙들고 있는 시월의 그 마지막 밤1

  기우는 시월의 옷자락을 설풋 잡은
  즐거웠던 오후가 비극으로 치닫는 동안
  실종된 책임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 누구의 멱살을 잡아야 하는가

  벌써부터 人命은 在人이었다
  제 목숨
  다 태어날 때 두 주먹 안에 꼭 쥐고 온다고
  손바닥 깊이 새겨져 있는 것 아니었나

  순서도 없이 황망히
  三途川에 든 이들 발 시려 어이하나
  모든 비겁을 덮어버리려는 듯
  비정하게 눈이 내린다
  차갑게 쌓이는 雪, 設, 說
  이 겨울
  덮을 것이 많아서 폭설이 잦다
  
  

참혹한 시선

  

  어둠에 갇혀 나오지 못했네
  그 밤,
  폭우는 피곤한 우리를 잠재웠고
  거칠게 입막음했네
  숨을 틀어막는 흙탕물에 비명조차 삼켜야 했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난타
  희망은 우리의 손을 놓아버렸네

  사람들이 뒤늦게 와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네
  의아한 눈빛으로
  태어나 처음 본다는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의 가난을 질책하는
  저 눈초리
  우산 아래 밝게 빛나는 구두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네
  가난했으나 떳떳한 최선에
  누추陋醜라는 죄명을 입히네
  똥물을 끼얹는 거만倨慢
  우리의 죽음을 박제하여 매달았네

  가난하여 햇살을 포기하고
  지하로 밀려난 설움이
  생명을 빼앗기는 형벌로 온다는 걸
  미처 몰랐던 도시의 그늘 속
  다행인지 불행인지
  병든 노모를 남겨두고 온 것
  떠밀리는 물살에 휩쓸리며 내내
  목젖에 걸리네
  
  
  

주석

  1. 〈잊혀진 계절〉(가수 이용)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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