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내 인생
독사 패거리는 아침부터 골목 입구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요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들의 먹잇감인 깡마르고 힘이 없는 혼혈 소년을 말이다.
독사 패거리 머리 위로 똥물을 쏟아붓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뒤 사흘이 흐른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독사 패거리가 골목 입구로 들어서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녀석들을 발견한 것은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로또에 당첨된 것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꽤 운이 좋았다. 마침 오줌이 마려워 옥상 콘크리트 난간 밑에 놓인 페인트통에 오줌을 깔기고 있는데, 멀리 큰길에서 독사 패거리 7명이 거들먹거리면서 골목 입구로 다가서는 걸 보게 되었다.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독사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팔자걸음으로 앞장서 걸었다. 남학생 셋은 저마다 야구방망이와 쌍절곤, 목검을 손에 쥔 채 독사 뒤를 한 걸음 뒤미처 따르고 있었다. 뱀 문신녀를 비롯한 여학생 셋은 앙증맞은 배낭을 어깨에 멨는데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 연신 깔깔거린다. ‘왕성한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보고 돌아가는 늙수그레한 여자 둘이 녀석들 옆을 지나간다.
바지춤을 올리고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독사 패거리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녀석들은 골목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저희끼리 지껄이고 있을 뿐이다. 여학생들의 하이 톤 목소리가 깨진 유리 조각처럼 귀청에 꽂힌다. 녀석들의 독기 품은 말을 대충 옮기자면 누군가를 작살내겠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란 바로 녀석들에게 똥물을 뿌린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헛웃음이 나왔다. 녀석들은 흉기까지 손에 쥐고 있다. 옥상 철문을 잠가놓고 옥탑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녀석들과 마주칠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녀석들은 몇 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서 담배나 피우다가 제풀에 지칠 게 뻔한 일이다. 그런데 요한이 문제였다. 독사 패거리가 진을 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녀석들에게 붙잡혀 낭패를 당할 게 분명했다. 요한은 내가 아는 단 한 명뿐인 또래이다. 게다가 내게 치킨을 사다 준 녀석 아닌가. 적어도 치킨값은 해야 했다.
계단을 내려가 요한이 사는 405호 앞으로 갔다. 벨을 누를까 했는데, 그냥 문 앞에 서서 요한을 기다렸다. 잠시 후 요한이 책가방을 멘 채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요한은 푸르고 회색빛이 감도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형, 무슨 일이야?”
“형이라 부르지 말랬잖아.”
나는 약간 짜증이 어린 목소리를 냈다.
“아 그랬지”
“따라와.”
퉁명스럽게 말하고 나는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나와 요한은 옥상을 가로질러 골목길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향했다.
“저길 봐.”
나는 손가락으로 독사 패거리를 가리켰다.
“난 또 뭐 대단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요한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입가에 웃음까지 지어 보인다. 내가 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겁쟁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야? 녀석들이 너를 두들겨 패려고 죽치고 앉아 있어.”
“걱정할 건 없어. 몇 대 얻어맞고 돈이나 몇 푼 뜯기면 그만이야. 뭐 죽이기까지 하겠어.”
“그래서 늑대 소굴로 나 잡아 잡수쇼 하고 제 발로 들어갈 작정이야?”
“아니.”
“그럼?”
“죽기 살기로 싸울 거야. 이젠 더는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라 말했잖아.”
무식한 건지 무모한 건지 요한의 눈빛에서 어떤 결기 같은 게 느껴졌다.
“이봐, 객기 부릴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네가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언제는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면서?”
요한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고지식한 인간아,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옛말에 누울 자리 봐가며 다리 뻗으랬어. 넌 싸워본 적도 없다며? 싸움해본 적이 없으니 싸움박질 실력도 형편없을 거야. 게다가 녀석들은 넷인데 너는 혼자야. 계집애들까지 치면 일곱이라고. 널 가지고 노는 꼴을 보니 계집애들도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무슨 수로 혼자 올림픽 양아치질 금메달 급인 녀석들과 맞붙겠다는 거야?”
나는 정말 답답해서 충고한답시고 지껄여댔다. 요한에게 말을 쏟아내면서 스스로가 떠버리가 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말수가 많은 인간이었단 말인가. 지금껏 살면서 이처럼 말을 많이 지껄여본 적은 하늘에 맹세하건대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왜 혼자야? 네가 있잖아.”
요한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저 양아치 패거리를 상대해야 하는데?”
“넌 싸움을 잘하잖아.”
“내가 싸움을 잘한다고? 난 그따위 허튼소리 한 적이 없어.”
“저건 뭐야?”
요한은 옥상 한편에 놓인 녹슨 벤치프레스와 벤치프레스에 걸려 있는 40킬로짜리 바벨, 그리고 옥탑방 처마에 걸려 있는 샌드백을 가리켰다.
“저건 운동기구일 뿐이야. 바벨을 백 번 천 번 들어 올리고 샌드백을 수천 번 두들긴다고 해서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야. 솔직히 싸움질해본 적도 별로 없어.”
물론, 그 말은 사실일 수도 거짓말일 수도 있다. 나는 싸움을 피한 적은 있지만, 싸움을 두려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싸움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어. 넌 내 친구잖아. 그러니 날 도와줘야 해.”
“친구?”
“그래 친구. 넌 내게 하나밖에 없는 친구야.”
요한의 말이 맞다. 나는 요한에게 하나뿐인 벗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율목동으로 이사를 온 후 누구 한 명 말 상대를 한 적이 없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옥탑방에 기어드는 아버지를 빼곤 내가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는 이 세상 한복판에 홀로 내던져진 외톨이었다. 나를 돌봐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요한도 외톨이긴 마찬가지다. 비록 내가 요한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얼마 되지 않지만, 그와 외톨이라는 의식을 공유한 채 오랜 세월을 한배에 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요한의 말마따나 우린 서로를 지켜줘야 하는 벗이다. 그러나 굳이 늑대 소굴에 들어가 양아치들과 푸닥거릴 할 필요는 없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야.”
나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이런 쫄보.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한다. 그런데 어떡하지? 녀석들이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노리는 게 나 하나뿐이겠어? 너도 조심해야 할걸.”
요한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며칠 사이에 꽤 낙천적으로 변했다.
“뭘 어떡해. 그냥 옥상 문 걸어 잠그고 있으면 제풀에 지쳐서 돌아가겠지.”
그날 이후, 나와 요한은 옥탑방에서 함께 지냈다. 독사 패거리는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 골목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남학생 패거리는 공부를 접었는지 점심 무렵까지 골목 입구에 죽치고 있었는데, 여학생 패거리는 아침에 들렀다가 곧 사라지곤 했다. 아침이면 요한은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하지 않고 곧장 옥상으로 올라왔다. 딱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나로서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쌀이 떨어져가고 먹을 만한 반찬거리가 없는 것이 굳이 골칫거리라면 골칫거리였지만, 쌀통에는 몇 끼 먹을 쌀이 남아 있고 라면도 몇 개 남아 있었다.
나는 꽤 두터운 선시집을 베개 삼아 뒤통수 밑에 깔아놓은 채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에 멍한 눈길을 던지고 있었고, 요한은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했다. 요한은 게임을 하다가 지겨워지면 벤치프레스에 누워 바벨을 들어 올렸다. 40킬로짜리 바벨을 들어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 5킬로짜리 바벨을 바 양쪽 끝에 갈아 끼웠다. 요한은 처음에는 그것도 겨우 들어 올렸다. 약골치곤 대단한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벨을 들어 올리다 보니 요한은 며칠 만에 바벨 무게를 30킬로까지 올렸다.
“이봐, 힘내라고.”
나는 바벨을 들어 올리느라 끙끙거리는 요한을 격려했다.
패거리들이 골목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옥상에만 꼼짝없이 갇혀 있는 꼴이었지만 무료하진 않았다. 줄곧 혼자 옥탑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내 옆에 요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요한 둘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이골이 난 녀석들이었다. 우리는 따로따로 소일거리에 몰두했다. 나는 초여름 아침 햇살을 쬐면서 두어 시간 동안 평상에 드러누워 선시집을 읽었고 요한은 핸드폰 게임에 열중했다. 그리고 점심 무렵까지 우리 둘은 번갈아 바벨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질 때까지 스쿼드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겨댔다. 운동을 마치고 우리는 가건물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러곤 속옷 차림으로 옥탑방에 드러누워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낮잠을 잤다. 배고파오면 요한이 집에서 가져온 인스턴트 냉동식품과 옥상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방울토마토를 먹어치웠다. 하루하루가 평온한 일상이었다. 물론 하루에 몇 번씩 독사 패거리가 올라와 요한의 집 현관문과 옥상 철문을 발로 걷어차고 욕지거리를 하며 소란을 피워댔다.
“너희 거기에 있는 거 다 알아! 죽기 싫으면 당장 튀어나와.”
우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지나면 독사 패거리도 지쳤는지 어디론가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질긴 녀석들이긴 했다. 아니면 골목 입구에서 죽치고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바닥에 가래침을 뱉는 일밖에는 할 일이라곤 없는 녀석들이거나.
요한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썩 괜찮은 녀석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의기소침한 게 단점이었지만 생각이 깊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형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요한은 내 친형 바우와 성격이 비슷했다.
바우 형은 나와 두 살 터울인데, 요한처럼 심약한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형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거 같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형도 요한처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초등학생 시절에 형이 눈에 멍이 들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학교에서 돌아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물론 형이 중학생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한테 얻어맞고 다니지는 않았던 거 같다. 중학생이 되면서 형은 내성적인 성격이야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키도 크고 덩치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즈음 우리 형제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활화산처럼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끝장을 볼 태세였다. 초등학생 땐 서로 티격태격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우리 형제는 각별한 사이가 됐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형은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서기로 하면서 서로 아들 하나씩을 떠맡기로 했는데, 형은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선수를 쳤다. 나에게는 아버지를 따라나설 수밖에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다시 떠올리기는 끔찍한 일지만, 고작 2년 전 일이다.
아, 요한 녀석이 바우 형과 비슷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녀석은 기타를 썩 잘 친다. 바우 형도 기타를 잘 쳤다.
“이건 누구 기타야?”
옥상에서 함께 지낸 지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요한은 옥탑방 책더미에 기대어 있는 기타를 가리키며 물었다. 녀석은 대답도 듣기 전에 손을 뻗더니 기타 목을 잡아 들고, 조심스럽게 기타를 품에 안았다.
“형 거야. 바우 형.”
“형이 있어?”
요한은 튜닝하면서 말했다. 튜닝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건성으로 묻는 투였다.
“그래. 형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 어머니와 형 둘은 떠났고, 아버지와 나 이렇게 둘은 남았지. 아니,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어머니와 형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와 내가 떠난 셈일 거야.”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주 형, 미안해. 괜한 소리를 꺼냈네.”
“이 자식이…… 형이라 부르지 말라고 그랬잖아……”
“미안. 뭐 듣고 싶은 노래 있어? 내가 비록 학교에선 왕따지만 노래는 가수 뺨치거든.”
녀석은 튜닝을 마치고 코드를 몇 개를 바꿔가며 기타 줄을 튕긴다. 그러면서 마치 무대에서 즉석 신청곡을 받는 가수처럼 나를 빤히 쳐다본다.
“〈돈 룩 백 인 앵거〉.”
“오아시스?”
“그래. 오아시스 노래.”
“좋았어, 나도 오아시스 팬이야.”
녀석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입가에도 웃음이 자리 잡는다. 눈빛은 진지하게 빛난다.
요한은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기타 줄을 뜯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아, 이 왕따 녀석은 정말 멋진 목소리를 가졌다. 발음도 좋다. 눈을 감고 있으니 오아시스 리더인 노엘 갤러거가 내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듯하다. 연주는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노래만큼은 록스타 뺨을 치듯 잘 부른다. 요한은 한 곡을 끝내고 바로 한 곡을 더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린 데이의 음악이다. 〈트웨니원 건스〉…… 나는 요한의 기타 반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바우 형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형은 혼자서 기타를 배웠다. 유튜브 영상을 뒤져가면서 밤늦게까지 연습했다. 형은 기타가 마치 분신인 양 기타를 품고 살았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 안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을 기타를 찾아냈을 때,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호기심 가득했던 형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형은 어머니를 따라나서면서 무슨 이유로 기타를 두고 간 것일까, 가끔 형이 두고 간 기타를 볼 때마다 든 생각이다.
“어때? 괜찮았어?”
요한은 노래와 연주를 끝내고 기타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연주는 별로지만 멋진 노래였어.”
나는 엄지를 올리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기타를 사주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어. 아버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외롭고 힘든 일들을 겪게 될 거라고 했어. 그러면서 그럴 때마다 기타를 치면서 세상일을 이겨내라는 거야. 그때 아버지가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가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야.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를 보채서 두 달 동안 교습소에서 기타 레슨을 받았어. 그런데…… 곧 그만두고 말았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다 보니 사는 게 지겨워졌고 흥미를 잃었거든.”
“바보짓이야.”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이제 다시 기타를 칠 거야. 엄마가 돈이 조금 모이면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가게를 차릴 생각이거든. 난 거기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돈을 벌 생각이야.”
“꿈이 있다니 멋진 일이야.”
나는 정말로 요한이 부러웠다. 우울함을 짐처럼 달고 다니는 줄만 알았더니 녀석에겐 꿈이 있다. 그런데 내게는 아무런 꿈이 없다. 나중에 무얼 하고 살아갈지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내 마음속에서 요한이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멀어졌다. 나와 요한이 서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유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서로의 가슴속에 품고 사는 존재일지 모른다. 갑자기 돌로 짓누르는 것 같은 고독감이 밀려왔다. 질병처럼 따라붙는 외로움 말이다. 나는 요한에게 내 고독감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음악이 듣고 싶어졌어.”
나는 요한과 마주하는 자리를 피하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곧바로 옥탑방에서 아버지와 내가 폐문짝 여러 개를 이어 붙여 만든 가건물 거실로 나왔다. 요한도 기타를 책더미에 기대어 두고 나를 따라 거실로 나왔다. 천장에 머리가 닿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엄연히 거실은 거실이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탁자가 있고 소파도 있다. 탁자와 소파는 ‘오거리 다방’이 폐업하면서 내다 버린 물건이다. 한쪽 벽에는 아버지가 애송이 시절부터 중고음반 가게를 뒤지면서 모아놓은 레코드판과 시디가 가득 쌓여 있다. 바로 옆 탁자 위에는 연애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오디오 앰프와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오디오를 선물했을 때가 아마도 둘이 서로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도어스의 레코드판을 재킷에서 끄집어내고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요한은 무슨 기묘한 물건이라도 보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누구야?”
“도어스 보컬, 짐 모리슨.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어.”
어느새 요한의 손에 음반 재킷이 들려 있었다. 녀석은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짐 모리슨의 얼굴 사진이 있는 재킷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나는 우리 부모 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했던 밴드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곤 바늘을 레코드판 위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 곡 〈브레이크 온 쓰루〉가 흘러나오자, 요한은 눈사람처럼 굳어버렸다. 마치 음악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 보였다. 한 곡이 끝나고 또 한 곡이 흘러나와도 녀석은 옴짝달싹하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했다. 녀석의 그런 모습에 나도 숨을 죽이고 도어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도어스의 〈웨이팅 포 더 선〉이 흘러나오자 요한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아닌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녀석이 다 있다니! 나는 요한이 정말 심약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 역시 〈웨이팅 포 더 선〉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옥탑방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 때 일이다. 어머니랑 형이 집을 나가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아침이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도어스의 음반을 틀어놓은 채 강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 시간에 잠깐 반지하 창문으로 흘러드는 햇발이 방바닥에 시체처럼 쓰러져 잠들었던 나를 비추었다. 나는 며칠 동안 앓아누워 있었다. 열은 나지 않았는데, 뼈마디가 녹아내린 것처럼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온몸이 쑤셨다. 밤새워 뒤척인 탓에 얼굴을 비추는 햇살도 반갑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갔더니 아버지가 식탁 앞에 앉아 식탁 위에 놓인 소주병을 마주하고 있었다. 거실 오디오에서는 도어스의 〈웨이팅 포 더 선〉이 망치질하듯 터져 나왔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주체할 수 없었다. 그냥 가슴속이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왔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순간 나는 소년이 되었다.
요한과 옥탑방에서 함께 지낸 지 나흘째 되던 날에 나는 요한에게 씨름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가건물 창고에 처박아놓았던 침대용 매트리스를 두 개 끄집어내 옥상 바닥에 나란히 깔아놓고 자세부터 발기술과 손기술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샅바가 없는 씨름이다 보니 레슬링이나 유도나 다름이 없었다. 상대방의 허리춤이나 바짓가랑이, 소매를 붙잡고 밀고 당기는 것부터 가르쳐주었다. 요한은 내게 막무가내로 덤벼들곤 했는데, 나는 녀석의 힘을 이용해 가볍게 넘어뜨리거나, 번쩍 들어 올려 매트리스 위에 패대기치기도 했다. 깡마른 요한을 상대로 기술을 거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녀석은 바닥에 자빠질 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씩씩거리며 내게 달려들었는데, 내게 씨름을 가르쳐주었던 아버지의 말로는 씨름 신동이었던 내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학교 운동부에서 씨름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형제를 학교 운동장 모래밭으로 끌고 가 씨름을 가르치곤 했다. 아마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심약한 큰아들의 성격을 고쳐놓으려는 심사였던 것 같은데,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바우 형은 그다지 씨름에는 소질과 관심이 없었다.
“씨름 말고 태권도나 권투 같은 싸움을 가르쳐줘.”
형이 아버지에게 불만을 터뜨릴 때마다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오히려 씨름에 재능이 있는 쪽은 나였다. 물론 씨름뿐 아니라 나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아이들이 꼬맹이 시절부터 태권도장에 가서 품새니 예의범절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할 때, 나는 엄마를 졸라 무에타이 도장에 다녔다. 아니, 내가 엄마를 보채서 무에타이 도장에 간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그곳으로 끌고 갔던 것 같다. 반짝이 트렁크를 입고 발목과 손목에 밴드를 감고 있던 무에타이 도장 관장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날이 저물고 나면 우리는 볼륨을 크게 올리고는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나와 요한을 이어주는 끈이랄까 뭐 그런 거였다. 나는 아버지의 구닥다리 레코드 컬렉션을 뒤져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록 음악을 요한에게 들려주었다.
옛날 록 음악을 어떻게 많이 아는 거야,라고 요한이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듣던 음악을 귀동냥으로 듣다 보니 시대에 뒤떨어진 음악만 듣게 되었다고 요한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요한은 최신곡이라면서 핸드폰에 저장된 오아시스와 그린 데이, 마룬 파이브, 콜드 플레이, 보이즈 라이크 걸즈, 스크립트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녀석이 들려준 음악도 구닥다리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보름이란 시간은 짧지만 많은 변화가 있는 시간이었다. 옥상에서 운동을 한답시고 여름날 햇살을 고스란히 쬐서 살갗은 까맣게 탔는데, 까만 피부 아래서 요한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무엇보다도 요한은 독사 패거리의 존재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학교 안 가도 되는 거야? 이유 없이 결석하면 부모에게 전화하거나 담임선생이 집에 찾아오기도 하잖아.”
나는 평상에 모로 누운 채 샌드백을 치고 있는 요한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학교에 빠진 적이 처음이 아니거든. 담임은 신경도 쓰지 않을 거야. 엄마한테 전화해도 통화가 안 돼. 엉터리 번호를 알려줬거든.”
요한은 화풀이라도 하듯이 샌드백에 주먹질이다.
“어떻게 학교가 그 모양이지? 적어도 학생이 며칠 아니, 보름이나 나오지 않으면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 일도 아닌데 화가 치밀어 올라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높아졌다.
“누가 아니래. 중학교 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랑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받았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녀석들은 나를 괴롭혔어. 아니, 더 악독해졌지. 하루는 용기를 내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담임에게 얘기했어.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알아? 담임은 녀석들을 불러놓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뿐이었어. 녀석들은 낄낄거리고 나는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심정이었어. 온통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날 이후로 괴롭힘이 더 심해졌고, 여자애들까지 가세해 나를 괴롭히는 거야. 다영이까지 그럴 줄 몰랐어.”
“다영이? 네가 맘에 두고 있는 애야?”
내 물음에 갑자기 요한이 샌드백을 두드리다 말고 멈춰 섰다. 그러더니 천천히 샌드백을 툭툭 치며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그냥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동네에 살아,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야.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았는데, 그때까진 착한 아이였어. 내가 따돌림을 당하면 나를 도와주기도 했어.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누군가가 왕따를 감싸주면…… 그 아이까지 왕따를 당하는 거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는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어. 다영이까지도 말이야.”
그의 입가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영인가 뭔가 하는 계집애가 독사 패거리라는 소리야?”
누인 몸을 일으켜 평상 위에 똑바로 고쳐 앉으며 물었다.
“그래. 다리에 뱀 문신을 한 아이가 다영이야. 옥다영……”
그렇게 말하며 요한은 온 힘을 다해 샌드백에 훅을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샌드백이 처마 끝에서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밀려났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
아뿔싸! 독사 녀석과 함께 요한을 가장 악독하게 괴롭혔던 뱀 문신녀가 요한이 짝사랑하는 계집애라니.
손무라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란 말을 남겼다. 멋진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싸우지 않고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찰리 채플린, 체 게바라, 무하무드 알리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진리이다. 그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봐, 안으로 움츠러들면 들수록 더욱 구멍 속 깊이 갇히는 법이라고. 뒤로 물러나지 말란 말이야. 뒷걸음질 치면 벼랑 끝에 다다르게 되고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야.
나와 요한이 맞닥뜨린 일이 꼭 그랬다. 우리는 더는 옥상에 갇혀 지낼 수만은 없었다. 우선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어머니와 형을 만나러 가야 했다. 물론 약속을 지킨 적은 별로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한 달에 한 번 꼭 만나자고 다짐했다. 학생 신분인 요한은 학교에 다녀야 했다. 요한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에 잘 다니는 줄 알고 있다. 아들이 학교 일진들에게 날마다 얻어터지고 돈을 뜯기는 줄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와 요한은 옥상 철문을 열고 우리 스스로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요한은 더는 독사 패거리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비록 보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요한은 종일 운동을 해서 몸도 탄탄해졌다. 복싱과 씨름도 곧잘 하는 편이다. 덩치만 믿고 설쳐대는 녀석 하나쯤은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나는 요한에게 선뜻 거리로 나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요한이 독사 패거리를 당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사 패거리는 모두 일곱이나 된다. 게다가 싸움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다. 그 말은 무에타이 도장 사범이 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려준 말이다.
“내일부터 학교에 갈 거야.”
요한이 갑자기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빛이 흐릿했다. 밤하늘은 좁아 보였다. 사방에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하늘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반지하나 옥탑방이나 꽉 막히고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멀리 타워크레인 불빛이 반짝거린다. 싸리재 고갯마루에 요양원 간판이 창백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왕성한 교회 첨탑이 밤하늘 한 귀퉁이를 찌른다. 지하 교회에서 북소리에 맞춰 목사의 우렁찬 찬양가 소리가 들려온다. 피아노 반주도 없다. 성도들도 별로 없을 듯하다. 오로지 목사의 목소리와 북소리만 들린다. 뒤이어 대성통곡이라도 하는 듯한 기도 소리.
“녀석들을 당해낼 자신이 있어?”
나는 잠시 딴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걱정 마.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도와줄까? 학교에 같이 가줄게. 집에 돌아올 때도. 나야 딱히 할 일도 없잖아. 내가 있으면 독사 패거리들도 또 똥물 뒤집어쓸까봐 함부로 굴진 못할 거야.”
“하하, 우습다. 그러면 똥통을 들고 나를 따라다닐 셈인 거야?”
“녀석들이 똥물을 겁낸다면 똥통이 아니라 똥 폭탄이라도 들고 다녀야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이 말이지?”
“맞아.”
“밤하늘이 멋지다. 별도 볼 수 있고. 나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될까? 어쩌면 너랑 같이 옥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잖아.”
요한은 마치 억지로 전쟁터에라도 끌려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네 엄마한테 여기서 자고 간다고 말해야지 않을까.”
“전화 걸어도 받지 않을 거야. 한창 일할 시간이거든. 사실, 엄마는 나한테는 신경 쓸 시간이 없어. 돈 벌기에 바빠. 엄마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노래방에 나가. 엄마는 얼른 가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야. 그런데 엄마를 따라 생판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게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어.”
“이봐,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차에 치여 죽는 길고양이 같은 인생을 사는 것보단 어딘가에 붙박혀 사는 게 백만 배 나을 거야.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당장 내일 일이나 생각해보자. 독사 패거리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를 말이야. 내일 아침이면 녀석들은 마블 코믹스나 홍콩 영화에 나오는 할리퀸이나 브루스 리처럼 야구방망이와 쌍절곤을 휘두르며 골목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을 거야.”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요한은 내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여전히 별일 아니라는 듯이 딴소리이다.
“이번 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야겠어.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있는 교회 말이야. 기타로 찬양가를 반주해줄 거야. 내 주를 가까이 하려거든…….”
“가톨릭 신자 아니었어? 이름도 요한이잖아?”
나는 건성으로 묻고는 평상 주변에 모깃불을 피웠다. 반바지만 입은 채 평상에 누워 여름밤을 보냈다간 모기떼에 뜯겨 몸이 벌집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톨릭이고 어머니는 이슬람이야. 내가 혼혈인 것처럼 종교도 뒤죽박죽이지. 내 몸에 종교 하나를 더 얹는다고 해서 나빠질 건 없어. 사실, 왕성한 교회 예배 소리는 정말 못 들어줄 정도로 최악이잖아. 피아노 반주는커녕 그 흔한 기타 반주도 없어. 게다가 무슨 십자군 원정대처럼 북만 두들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귀청이 터지겠어. 저렇게 교회를 운영해서 어디 월세라도 제대로 낼지 걱정이야.”
“이봐, 우리가 교회 걱정하고 있을 처지가 아닌 거 같은데.”
“그렇지. 내일 나랑 함께 학교에 가줄 수 있어?”
“글쎄…… 솔직히 우리 둘이 독사 패거리 일곱을 당해낼 자신이 없거든.”
“셋은 비리비리한 여자애들이야. 넷만 상대하면 된다고.”
요한은 따지듯이 말했다. 나는 요한의 따지는 듯한 말투가 우스웠다. 얼마 전까지 비리비리한 여자애들한테 폭행과 추행까지 당하면서 찍소리 한마디 못 냈던 요한의 찌질한 모습이 떠올랐다.
“다섯이야. 뱀 문신녀가 있잖아. 네가 짝사랑하는 다영이란 계집애 말이야. 그런데 너 다영이한테 학대당하는 걸 즐겼던 건 아냐?”
“어쩌면…….”
요한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진다.
“이런, 변태.”
“그래, 나 변태다.”
“설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다가 곧 소리 내어 웃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웃었다.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옆구리가 쑤신다. 아니 가슴이 아픈 것 같다. 누군가 갈빗대 하나를 부러뜨린 것 같은 아픔이다. 교회에서 다시 북소리에 맞춰 왕성한 교회 담임 목사의 찬송이 들려온다. 킹콩이나 고질라가 노래하는 듯하다.
“기타 좀 빌릴게.”
갑자기 요한이 옥탑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기타를 들고 나온다.
“뭐 하려고?”
“당장 교회에 가야겠어. 더는 못 들어주겠거든. 반주라도 해주려고.”
요한이 옥상 철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푸다닥 치킨’ 집 배달 오토바이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낸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주정을 부리며 소리를 지른다. 골목 안 무당집 ‘천진암’의 무당이 징을 쟁쟁 울린다. 꽹과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곧이어 북소리와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왕성한 교회 담임 목사의 노랫소리가 더욱 커진다. 갑자기 하늘에서 반주자가 뚝 떨어지자 왕성한 교회 목사는 한껏 들뜬 모양이다. 골목 안쪽 빌라에서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잠 좀 잡시다”라고 소리를 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