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부꾸미 외 1편
수수부꾸미
고모부가 돌아가시자 고모는
떡방 앞에 노점을 차리셨다.
부평고등학교 근방에 있던 가마터는 팔았고
송월동 항아리 가게는 누나들에게 맡겨졌다.
빈대떡이며 수수부꾸미 찹쌀부꾸미 등을 구워 파실 요량으로
연탄 아궁이가 딸린 좌판에
넓적한 번철을 올려놓으셨다.
떡방에 들어서기 전에 제일 먼저 인사받는 분은 고모셨다.
빈대떡 끄트머리가 타들어가면 세상 고민 짊어진 듯
이맛살 찡그리며 쇠 뒤집개 끝으로 꾹 찍어 떼어내시고
부꾸미 하나 먹을 테냐고 물으셨다.
낮고 기다란 나무 의자 한 곁에 모자와 책가방을 내려놓고
한 입 덥석 베어 물자, 돼지기름 냄새가 살짝 풍겨왔다.
묘하게도 빈대떡을 구울 땐 돼지 지방이 제격이었다
면실유 아마씨유 참기름 들기름 낙화생 등이
제아무리 좋다고 해도
반죽이 들러붙지 않게 돼지비계 한 덩어리로 쓱 문질러주면
혀끝을 감아채는 고소한 맛이 돌았다.
수수부꾸미에서 그 맛이 돌았다.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충 끓여준 이상야릇한 찌개처럼
묘한 맛 감이었다.
태평양 전쟁에 징용돼 산전수전 겪을 참에
오만 가지 다 드셔봤기에 엔간한 것은
죄다 맛있다는 말씀이 고모의 번철에서도 느껴졌다.
오늘 문득, 그 수수부꾸미가 생각났다.
2022년 동짓날도 어물쩍 넘어간 밤
철부지 시절의 감흥처럼
수수부꾸미 속에 파묻힌 거무스름한 팥 한 덩이를
냉큼 베어 물고 싶다.
설날 새벽
그믐날은
달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날이다
때마침, 내 몸의 기력도
거의 소진되는 날이기도 하다. 20여 년 전,
내가 만들어낸 가래떡은 대략 얼마나 될까? 계산했던 적이 있다.
지구 둘레가 대략 4만 킬로가 좀 넘는다 치고
네 바퀴 반을 돌았다는 계산을 해냈다.
참, 많은 떡을 쳤구나!
그런 날은 유독 일찍 일어나곤 했다
문단속은 잘 되었는지, 쓰레기는 누가 걷어차지 않았는지
얌체 같던 순댓집 할매가 혹시 기름 찌꺼기를
대충 비닐에 담아 버리진 않았는지
방앗간 주변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여명이 올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난로 쬐는 일에도 재미가 들렸다.
설렁설렁 마감한 일 탓에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셨던 부모님이 안쓰러웠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삭신이 쑤시고
손 마디가 저리고 온몸이 부어서
편안히 잠들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들아, 이제야 너도 정녕 아비가 되었구나!
아직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까마귀 두 마리가 신포동 하늘에
오명烏鳴을 남기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아버지처럼 구부러진 척추뼈를 곧추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