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믿음에 감화되어

기독교의 교리를 수립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당대 신앙인의 내면에 펼쳐지는 드라마를 묘사했다. 그 유명한 법과 죄의 변증법이 그 드라마 안에 있다. 법을 모를 때는 자신이 살아 있고 죄는 죽어 있었으나 법으로 인해 죄가 살아나고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는1 묘한 구절을 알랭 바디우는 초자아의 명령에 의해 분열된 주체의 (무)의식을 묘사한 것으로 읽은 바 있다. 무구한 욕구를 지닌 채 살던 인간은 법이 세워진 후 법에 어긋나는 욕구를 죄로 규정(당)하게 되고, 그에 따라 죄를 향한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법에 포획된 주체로 분열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2 죄가 되는 욕구가 있어 법을 수립함으로써 그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가 죄의식을 구성해낸다는 해석은 2천 년 전의 사도를 후대의 정신분석학이 성취할 사유의 선구자로 만든다.
사실 법과 죄의 변증법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3 안다고 해서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타락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다. 분열은 인간성 자체에 각인된 것이므로 분열 이전의 무구한 욕구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분열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다소간 극복할 방법은 법 자체의 분할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이 분할은 「로마서」 7장 후반부와 8장에 걸쳐서 서술된다. 거기에서 바울은 두 법 사이의 길항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죄와 사망의 법’과 ‘영의 생명의 법’이 그것들이다. 죄의 법에 사로잡힌 인간을 구원할 방법은 법 자체를 분할하여 죄의 법이 아닌 다른 법으로 이행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이행은 바디우의 주체론과 유비 관계에 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의 주체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해 관심interest을 따르는 어떤 자some-one로서 존재하던 인간이 사건event을 경험함으로써 이해 관심을 초과하는 충동을 따르기 시작할 때 생성된다. 이로써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자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이해 관심을 따르는 어떤 자와 상황 속에서 사건을 촉성하고자 하는 주체로 분열된다. 그에 따라 바디우에게 진리들의 윤리학에서는 단 하나의 질문만이 존재하게 된다. “어떻게 나는 어떠한 자로서 나의 고유한 존재를 초과하기를 계속할 것인가?”4
평론가 강경석의 첫 번째 평론집을 서평하는 자리에서 「로마서」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내가 『리얼리티 재장전』을 읽으며 다름 아닌 나의 믿음 없음을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육을 떠나지 못하는 어떤 자로서 살아가되 영의 길을 걷기 위해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바디우가 ‘상황’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켜선 곳에 제 자리를 찾으려 하며, 세상을 이길 수는 없다 해도 세상에 지지는 않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내가 비평가로서 지닌 자의식이었다. 문학 비평은 세상에 말을 거는 방법으로서 택한 일이었고, 상황의 밖에서 발견되는 진리를 상황 속으로 촉성하는 주체이고자 하는 의지의 귀결이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읽고 공부하고 쓰는 일이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들어줄 사람도 듣고자 하는 사람도 없는 곳에,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을 혼자서 쏟아내는 것은 아닌가. 도대체 어디에서 그 행위의 가치를 찾아야 할까.
이런 내게 강경석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문학과 세계를 대하는 그의 낙관적인 시각이었다. 그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품어 왔고, 전망의 부재와 파국을 말하는 비관적 담론의 홍수 속에서도 사소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을 한국 사회와 문학에서 식별해 온 것이었다. 『리얼리티 재장전』은 바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논의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의 글에서 이 가능성이 근거를 두는 곳은 2016년의 ‘촛불혁명’이다. 그 광장에서 터져나왔던 사회 곳곳의 막혔던 목소리들, 그리고 여전히 말하고 있는 작은 목소리들, 그러한 목소리들을 때로는 받아 적고 때로는 앞서 창출해내고 있는 문학 작품들. 이것들을 강경석의 글들은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촛불의 행렬에 함께 참여했고, 거기에서 한국 사회의 거대한 변화 가능성을 목격했으며, 그리하여 그것이 이후 한국 문학의 새 기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각자가 함께 가졌던 나와 강경석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왜 정권 교체 이후 훨씬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의 변화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그 속도가 더뎌지고 그에 대한 요구의 강도가 약해진 뒤 한 사람은 점차 말할 힘을 잃어간 데 비해 다른 한 사람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변화를 식별해낼 수 있었을까.
그중 하나는 아마도 사회의 변혁 방법론에서 온 것 같다. 강경석은 급진적이기보다는 점진적인 혁명을 지향하는 것 같다. 한꺼번에 모든 것이 바뀌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급한 어떤 사람들(고백하건대 내가 바로 이런 사람 중 하나였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달았다)의 눈에는 끝까지 가기를 거부하는 중도반단의 미약한 변화로 보이는 것들이 그에게는 새롭기 때문에 당연히 미약할 수밖에 없는 변화들로, 미약한 변화들 속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불가역적인 역사의 흐름을 창출해내는 움직임들을 그 속에 분명히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나의 무기력은 2016년의 ‘촛불 혁명’ 이후 극심해졌다. 이는 한편 2016년의 거대한 축제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세상이 축제 전으로 돌아가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016년의 촛불이 정권 교체를 이뤄낸 후, 한국의 정치권은 광장의 촛불이 폭발시킨 에너지를 흡수해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정권 교체가 모든 것이라는 듯 적당한 선에서 멈춰 서버린 것처럼 보였고, 이는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동조를 얻기 시작한 모든 정치적 주체들의 정치세력화와 성장을 막아서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리버럴리즘보다 더 나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고만 여겨졌다. 결국 그들의 행태는, 한없이 개방된 가능성들을 모두 다시 닫아버리며 스스로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전히 수구 진영에 대한 투쟁을 상연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퇴출의 수순에 있던 수구 진영의 정치적 공간을 다시 열어주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시민들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정권에 맹목적으로 반대하며 수구화된 세력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다툼 속에서 다른 모든 목소리들이 가려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리버럴 세력과 수구 세력의 격렬한 싸움은 그들을 넘어서는 다른 모든 목소리들을 지우기 위한 암묵적이고 비자각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내가 이처럼 목소리 큰 자들을 보며 실망할 때 강경석은 그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에게는 촛불혁명이 낳은 비가역적인 성과다.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것이 지속될 때 세상은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세상은 급진적인 비약을 통해서만 바뀌는 것이 아니며, 점진적 혁명의 전망은 언제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전망의 유지와 선포가 전망의 현실적 토대를 일부 구성한다는 점이다. 강경석은 스승 최원식을 따라 ‘파국론’에 거리를 두고, 혁명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담론들의 무력감이야말로 ‘리얼리티’ 안에 분명히 잠재하는 전망을 은폐하고, 그럼으로써 전망의 부재를 떠받치는 반어에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뒤집어 말하면 미래에 대한 낙관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전망을 길어 올리는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역설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유 아래 강경석은 1987년과 1997년이라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분기점들에 대한 일반화된 사유를 갱신하고자 한다. 그는 이른바 1997년 체제를 1987년 체제의 하위 범주로 설정한다. 한국 사회가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 포섭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6월항쟁과 위로부터의 6・29선언의 ‘타협’”5에 의해 조건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폐허를 주체에게는 우발적인 것으로 보이는 외래의 침입에 의한 것으로 규정할 수 없게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책임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1997년을 1987년의 하위에 놓는 데서 얻어지는 더욱 중요한 효과는 우리가 1997년 체제의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가 1997년을 넘어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은 1987년의 타협이 1997년의 폐허만을 낳지 않았다는 것을, 거기에서 발생한 또 다른 가능성들이 있었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의 말대로 1987년 체제를 낳은 “‘타협’의 최소주의”를 “아무리 낮춰 평가한다 해도 이제 민주화의 시간은 불가역적”6인 것이다. 강경석은 1987년을 1997년이 아니라 2016년에 연결한다. 이제 우리는 1987년이 당대의 타협과 1997년 이후의 뜻밖의 결과들로 해소되지 않았다고, 거기에서 생성된 가능성들이 살아남아 2016년을 열어젖히는 에너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는 한순간의 축제로 바뀔 만큼 말랑말랑하지 않다. 그러나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변화에 대한 믿음이 그 가능성을 열고 지속시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미 2천 년 전의 어느 기독교인인가가 사도 바울의 이름을 빌어 말하지 않았던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장 1절)라고. 역사가 우리 편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역사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최저한의 조건이다. 믿음을 놓지 않은 채 세계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강경석이 늘 그랬듯이.
주석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로마서」 7장 8~9절, 개역개정판 성서)
-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109~164쪽 참조.
- 일찍이 헤겔은 이러한 법과 죄의 변증법을 ‘법은 법이다’라는 간명한 문장을 통해 제시한 바 있다. 법의 권위가 법으로서 따라야 할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법이라는 형식 자체 때문에 발생한다는 통찰이 이 문장에 담겨 있다. 이러한 법과 죄의 관계는 「창세기」에 기록된 최초의 타락 이야기와도 통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울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져 낙원 에덴에서 쫓겨난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으로 의식함으로써 자연과 분리된 데 대한 불안과 죄의식을 서사화한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인간이 규범의 세계에 진입함으로써 신을 배반했음을 말하고 있다. 규범의 수립에 따른 타락이라는 테마는 유대-기독교의 뿌리 깊은 전통에 속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 알랭 바디우, 『윤리학』, 이종명 옮김, 동문선, 2001, 64쪽
- 강경석, 『리얼리티 재장전』, 창비, 2022, 152쪽.
- 같은 글, 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