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도서관 외 1편

  
  

구름 도서관

  

  나는 지금 햇살 눈부신 들판 한가운데 서 있다
  왼쪽 서가는 벼가 자라는 논이고, 오른쪽 서가는 잔잔한 호수다
  길 양편엔 오동나무 거목들이 줄지어 서 있다
  헤르몬산에서 흘러 들어온 눈 녹은 물일까
  물빛이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이다
  이곳은 주홍글씨가 사는 강물일까?
  어쩌면 용이 사는 바다인지도 모른다
  오징어와 감성돔, 왕새우가 자유롭게 헤엄쳐 다닌다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생명의 보물창고
  배고픈 자에게는 빵을,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준다
  서가 한쪽에서 서정抒情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인문학의 용사들
  시집 한 페이지를 열자 나비와 새들이 날아오른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포도주와 빵을 진보시키는 것
  아름답다는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
  언어가 가슴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빵의 행적을 따라가 볼까
  중세로부터 비단실을 뽑는다는 스테디셀러 
  몇몇 책들은 진주를 품은 듯 묵묵하다
  거목들과 키가 나란한 젊은 벽오동 한 그루
  봉황이라도 깃들기를 기다리는가
  제 영혼을 정화시키며 햇빛 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비상구

  

  바람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소용돌이친다
  집 안 어딘가에 불씨가 있었던가
  식구들은 단잠을 자고
  그는 새벽까지 과열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벽이 바람벽을 작동시켰던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애인한테 보낸 문자 메시지
  아내 폰으로 날아든 게 화근이었다 
  
  지나치게 뜨거운 체온이
  한밤중에도 비상벨을 울린다
  변명은 번번이 외부에서 발화점을 찾는데 
  
  왜 하필 우리 집이냐고 대책을 세우라는 옆집 여자 
  관리소장은
  비상구 바람 때문이라며 슬쩍 빠져 나간다 
  생활터전이 꽃밭인 그는 불잡이 119 소방대원
  집 안에 있는 불씨는 잡지 못하고
  바람난 애인 잡느라 불꽃이 튄다 
  
  진압되지 않는 마누라와 불꽃놀이 즐기는 애인
  사이에서, 바람은
  수시로 비상벨을 울리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방호스 달래느라
  남모르게 방화벽을 친다는데
  
  자다가도 전투태세 늦추지 못한다
  일요일에도 낚시터로 불 잡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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