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외 1편
가이아
그녀는 상심한 별일까 변덕스런 불안일까 고요와 물결을 주름잡다가 어느 순간 탁! 놓아버리고 탁한 눈빛으로 일어서 잔잔한 평일을 범람한다 사랑의 멜로디가 끊어진다
지각의 터진 틈에서 흘러나온 저 뜨거운 액체가 젤리처럼 부드러운 이야기를 휘감는다 남태평양 투포우6세 왕이 사는 통가 해저에서 소용돌이친다 우리가 모르는 피지 해안까지 휩쓸리는
동화 같은 이야기 상심한 껍데기인가 바다 한가운데로 떠밀리는 신화인가
물숨을 건너다 건너다 아직 다 식지 않은 별을 꺼내놓으려는가 내상을 입히는 몸속의 별을 고쳐 안으려는가 내륙에서 멀찌막이 살다가 가스구름으로 치솟아 오르며
그녀는 지하 케이블 교신을 끊어버린다 오리건, 워싱턴, 알래스카 알류산 열도와 남미 뉴질랜드와 홋카이도 오키나와 세계의 해안가로 길게 벌어진다 지구 반지름 일 프로를 볼 수 있는 혜안으로
집 떠난 저 가스구름을 어떻게 진정시킬까 뒤집힌 그녀 마음 알 수 없어 내륙의 사람들 부랴부랴 밀도가 달라지는 공기 속을 달려가고 있다.
유전流轉
구피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J는 잠시 반짝임을 멈추고 이마를 찡그린다 어항 물갈이 하던 손으로 뚜껑이 열린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한다 먹다만 케이크 다단계 팸플릿에 덕지덕지 묻어나온다
딩동! 할 때마다 동창생은 그녀의 은행 통장에 찍히는 적지 않은 숫자를 보여주었다 너도 한 번 먹어봐! 달달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끌려 J는 쉬워 보이는 낯선 물物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J는 친구처럼 유연하게 물物을 건너지 못 하였다
사실 J의 실종은 구피보다 오래되었다 남편이 가고 세상이 덮쳐왔을 때 J에게는 어린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물갈이를 할 때 펄쩍 뛰어오른 구피처럼 고작해야 5센티미터 몸집이 작은 구피처럼
J는 생의 기울기가 사지의 기울기로 불안전해 보일 때마다 펄쩍! 바닥을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것에 탄력을 받아 어느새 복지관 재활교사까지 되었다 아이들이 취업을 하고 출가를 할 때가지 장애와 불구의 날들을 안아주고 업어주고 쓰다듬었다 은퇴하면 유속이 느려지는 물水에서 놀리라 꿈꿔 왔는데 오늘은 구피 한 마리가 말썽이다
“네가 들어간 것이니 네 잘못이다” 쓰레기를 주워 담고 나머지 열대어들을 물속에 넣어주고 밥을 먹고 티비를 보아도 구피의 방향으로 온몸이 기우는
J는 다시 사라진 구피를 찾기 시작했다 썼다 지운 고객 이름이나 던져버린 영어 단어장 같은 것을 쓰레기통 안쪽에서 꺼내 가지런히 무릎에 올려놓고 그 사이 어딘가에 묻어 있을 구피를 찾는다
새로 받은 수돗물이 가라앉을 무렵 마법처럼 펄쩍! 구피가 나타났다 까맣게 커피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을 보니 홀몸이 아니다 당황한 J는 얼른 싱크대 수돗물을 틀었다 쏴아아! 몸을 훑어 내리는 차가운 물에 또 한 번 쭈욱! 사지를 뻗고 구피는 기절해버렸다
구피에 관한 한 J는 이제 짧게 배트를 잡는다. 쌀을 씻으려고 받아놓은 미지근한 물에 빠르게 던져 넣는다 정확하게 치는 타법의 활력으로 구피는 깨어났다 죽지 않고 계속해서 깨어났다
J는 그제서야 물物 속에서 물水속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꾸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관성의 다리를 떼어놓고 알비노 로즈테일 구피, 자유롭게 유영하는 지느러미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