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빛 외 1편
8월의 빛
아빠는 서울행 기차를 타고 왔다
커피를 한 잔 사달라고 했다
커피 마시는 아빠는 처음 봤다
한때 아빠는 화를 잘 냈다
이번엔 불쑥 푸른 시집과
붓을 꺼냈다
그건 왜요?
시집에 물감을 왜 발라요
이걸 아직 못 읽었거든
물감을 칠하면 글자가 보일 거다
봐라, 여기
떠오르지
그 시집은 아빠에게 드린 것이다
새하얀 얼굴로
관 속에 누워 있던 아빠
푸른 시집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은빛 물감을 쓱쓱
까만 글자가 지워지고
은빛이 떠올라
거꾸로 내리는 눈
아빠는 내가 태어난 8월에 죽었다
날 앉혀두고 가는 아빠 등에서
반짝이는 글자들
안녕, 잘 가요
손을 흔들었지만
빛은 떠났다
사람을 찾습니다
그는 남자거나 여자 혹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그는 백 일째 씻지 않았다
그는 니체를 읽은 다음
사르트르를 집어 던진다
그는 어제 토했지만
오늘은 그럭저럭 먹었다
그는 아무렇든지 나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
나는 그의 외양을 설명할 수 없다
전단지에 무엇을 써야 할까?
예측 불허의 덩어리
라고 쓸까?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저녁이면 거리에 앉아
종말의 다리를 씹는다
퇴잇
몰락의 살점에 섞인 뼛조각을 뱉어내며
더러운 물에 알코올을 섞어 마신다
서서히 다들 죽는 중
죽는 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그는 있다
나와 이야기를 할 사람
누구와든 이야기를 할 사람
죽어가는 별에 대해
행성의 끊임없는 노래에 대해
그를 찾고 있다
아침식사는 거르고
점심에는 대로를 활보하며
문명을 비웃기 좋아하는 사람
인간이 쌓은 탑들에 해가 들면
그는 저녁 빛을 받으며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할 것이다
결국 그는 추락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추락한다
하지만 높이 비상하는 것을 바라본다고
볼 수 없는 걸 봐
우리 사이에 끼인 뼛조각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레 도착하는 사람
영원히 오지 않는 모레
영원히 뭉쳐지지 않는 모래
나는 술을 토하며
종말을 그리워하며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낙관론자를 비웃으면서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어느 밤 그가 내 창을 두드린다
사람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