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돌 검은 돌 외 1편

 
 

  흰 돌 검은 돌

 

  그와 처음 눈을 마주한 건 흑석동의 국밥집에서였다
  김치 반찬으로 공깃밥부터 다 먹고 나서야 국을 뜨던 그는 내게
  미안한데 막걸리 한 병만 더 마시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알겠다고 난, 그것까지만 마시자고 대답했는데
  우리는 몇 번의 자리를 더 옮겨 술을 마셨다 계산은 번갈아 했다

  그와 두 번째로 눈을 마주한 건 한 지방 도시의 낭독회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시를 낭독하다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는데
  그를 따라 흐느끼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헛기침을 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나도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던 것 같은데 그건 내가 진행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편의 시를 더 낭독해야 하는 그에게 난 손수건을 건넸고 아직까지 그 손수건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와 세 번째로 눈을 마주한 건 우연히 만난 지하철에서였다
  조금은 큰 목소리로 내 본명을 부르는 바람에 열차 승객들 몇몇이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눈인사만 겨우 하고 계속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몇 정거장 후 내 옆에 자리가 비자 그가 냉큼 와서 앉았고 나는 그와 몇 마디를 나누다가 내려야 할 곳보다 먼저 내렸다 바깥 공기가 꽤 찼던 것 같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먼저 내린 김에 곧장 집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그와 네 번째로 눈을 마주한 건 새벽 1시의 공원에서였다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에게 여기는 금연구역이라고 했더니 그는 조용히 웃으며 이건 전자담배라고 괜찮다 하였다
  정말로 괜찮은지는 모르겠으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내게 그는
  갑자기 찾아와 이런 말은 곤란하겠지만, 돈을 얼마만큼 빌려줄 수 없냐 물었고 난 요즘 휴직 상태란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씩 웃으며 그는 내게 검정 봉지를 건넸는데 귤이 5천 원어치쯤 담겨 있었다 오는 길에 샀다는데 이미 까먹은 귤껍질도 조금 있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한 건 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딱히 다른 사진이 없었는지 평범한 증명사진이 영정으로 쓰임하고 있었다 그가 안경 벗은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는 스스로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마무리를 했다고 들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영정 앞에 국화처럼 하얀 돌을 하나 두었다
  빈소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우는 사람들도 있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더욱 많았다
 
 

  해와 달이 된

 

  그런데도 둘은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사흘간 울고 나흘간 웃은 뒤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여덟 번째 날에도

  일요일에 떠난 사람이
  월요일에 다시 돌아와

  월요일에 떠난 사람은
  일요일에 다시 돌아와

  양력설은 제법 따뜻
  했고요
  음력설은 무척 추웠
  는데요

  저희를 구하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리시고, 저희를 버리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리시라,
  빌어야 하는 것을
  저희를 구하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리시고, 저희를 버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리시라,
  비는 바람에

  신도 깜빡하고
  구하시려는 자에겐 썩은 것을
  버리시려는 자에겐 새것을
  내리시어

  하나는 오르고
  하나는 떨어져

  붉게 물들었답니다
  마음으로 마음으로 마음이 아닌
  것으로
  흠뻑 젖어서

  버려진 이는
  일요일에 미안하면
  월요일까지 미안하고요

  구해진 자는
  월요일에 감사해서
  일요일까지 감사했답니다

  양력설엔
  망이었고요
  음력설엔
  삭이었는데요

  혼자 나이를 먹고 싶진 않아서

  양력설엔
  떡을 먹고요
  음력설엔
  국을 먹었답니다

  삼월은 춥고 사월은 따뜻한 뒤
  오뉴월이 되면
  한을 품은 자가 있어

  붉게 붉게 물들게 될까요
  미움으로 미움으로 미움이 아닌
  것으로
  흠뻑 젖어서

  일곱 번째 달의 일곱 번째 날에 1년에 한 번 다시 만나게 되어도
  버려져서 해가 된 이와 구해져서 달이 된 이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모인 까치 까마귀들만 괜히 머쓱해진다는데

  팔월이 되면 다시
  하나는 이어지고
  하나는 끊어져

  양력 추석은
  삭일 거고요
  음력 추석은
  망일 겁니다

  빛을 잃은 그믐부터
  어둠을 잃은 망까지

  화요일엔 불날 거고요
  수요일엔 물날 겁니다
  목요일엔 나무날 거고요
  금요일엔 쇠날 겁니다
  토요일엔 흙난
  다음엔,

  일요일에 운 사람이
  월요일엔 웃을 겁니다

  월요일에 운 사람은
  일요일까지 울 겁니다
  
  

권창섭

시집 『고양이 게스트하우스 한국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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