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토스포멜 외 1편

 

  파토스포멜

 

  일정한 간격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시계가 움직이지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상한 부분이 없는 식물은 조화처럼 보인다.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의도가 있다
  브레히트는 생각했다 그것을 보았는데, 왜 그것에 관하여 쓰지 않지? 브레히트는 잘못된 세계에서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된 것을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떨어지는 중인 나무의 수피. 아직 붙어 있는 껍질. 그 틈으로 드나드는 공기. 흰불나방 애벌레. 기울어지는 그림자. 시간의 작동. 그리고 너는 떠올릴 거야
  네가 기억이라고 정한 것들

  마당에 딸린 화장실에서 불장난을 했어
  집이 탈 뻔했지만 혼난 기억은 없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 기념으로 심은 감나무
  그곳에 올라가 옆집에 사는 동물들을 보곤 했지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훔쳐보았어 누구도 도망가지 않았지

  사람은 중요한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억된 모든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반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브레히트를 이끌고 바람이 불지 않는 정지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살아 있는 것이 없잖니.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여
  그때 브레히트의 옷깃과 목 사이로 떨어지는
  차가운
  빗방울

  아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누군가 집에서 가져온 통조림을 따면 그 속에 손을 넣어 집어 먹기 시작했다 뚜껑의 날에 손이 베여가면서

  그러나 이 고통은 무엇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이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시아 아포스트로피 피아노

 

  노아시 속에 노인과 아기가 웅크리고 있다
  가지에는 시취가 걸려 있다
  취기는 분노를 확대한다
  새로운 기술은 다리가 길다
  큰 보폭으로 술어를 쓰고 나면 작아진 등 뒤의 세계
  어법은 나를 숨게 하고
  법전은 모서리 끝에 놓여 있다
  전력을 다해 고립을 원하게 되는 사람
  역사 앞에서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낭떠러지를 떨게 만들지
  분노는 지속과 멈춤
  빠른 속도로 끓어오르는 차가운 탄산
  분노는 도구의 용도를 변형시킨다
  가까이 와서 이 구멍을 들여다봐
  멍 자국으로 덮인 땅
  분노는 국경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게 해
  가파른 경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고는 강물을 저주하게 한다
  고립을 원한 건 아니었어
  립스틱이 인주를 대신한다
  
  

성다영

1989년 구례 출생. 2019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 『스킨스카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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