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한 시 외 1편
자신을 위한 시
아내가 귤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귤을 샀다
나는 아내의 슬픔을 모르지만
귤과 귤은 너무 가까워서
어느새 물러 있고
나는 귤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채
귤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아내를 죽게 했을 것이다
아내가 먹고 싶어 한 귤은
제주의 한 농부가
아침에 수확한 귤이었다
그 귤에는
아내를 괴롭히던 슬픔이 없다
귤은 언제나 주황빛 전구를 밝히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그 집에서는 슬픔을 깨물 수 있다
아내의 알갱이가 아내가 떠난 자리마다
있다,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나
믿음을 원하면 믿음은 믿음을 시험한다
껍질을 잘 말려 우리면 차가 되듯이
그전에 껍질은 쉽게 버려지지만
아내는 늘 귤피를 책상 위에 올려둔다
오늘 아내는
귤 두 개를 까먹었다
나는 아내의 슬픔을 본다
아내가 한밤 불도 켜지 않고
첩첩산중에서 홀로 울고 온다는
거짓을
거짓이 많은 마음이 가장 진실한 마음
이유도 없이
이유를 알 필요도 없이
우리는 짓무르고 버려진다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산 귤
가만히 보면 귤은 언제나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걸 자꾸 끄는 사람은 바로 나고
아내는 귤에 원하는 것 같다
아내를 위한 시를 쓰면
아내는 아내를 위한 시를 읽고
그것이 자신을 위한 시는 아니라고
믿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슬픔을 모르지만
아내를 위한 슬픔은 알기에
비가 오면
아내는 전을 떠올린다
해물파전이나 녹두전이나 감자채전
전을 해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흐르게 둔다
흐르게 둔다
이 말을 아내는 지키려고 한다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사실 나는 무엇 때문이든
누구 때문이든 상관하지 않는데
냉동고에 해물야채전 밀키트를 기억해내는 건
역시 나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는 것도 나다
반조리된 전을 올려 굽는 것도 나다
냄새를 맡는 건 아내일 텐데
아내는 그저 흐르게 둔다
그걸 보는 건 나다
양념간장을 쏟는 것도
키친타월을 꺼내 그걸 닦다가
우는 것도 나다
그럼 아내는 말한다
흐르게 둬
전은 끝이 좀 타야 맛이 좋아
아내가 맛있게 전을 먹으면
나는
우리가 더는
지킬 것이다 아내는
별 뜻 없이 노래하면서
그러면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내에게 말해준다
흐르게 두자
그때 아내의 눈에선가
입에선가
가슴에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