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거나 구원하거나 외 1편
잃거나 구원하거나
끝없는 극야를 헤매는 사이, 나는 네 눈빛에 농락당하고 싶어. 마드모아젤? 여자로 사는 건 어때. 여자로 사는 건 좆같아. “Being woman sucks.” 꼬리가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너에게 사하라 은빛 개미를 선물했지. 사실은 술 마시고 놀다가 캠핑카에 네가 치였어. 하지만 너는 깔깔 웃었지, 재미있어서. 인류가 뭐 그렇게 대단해? 나는 도통 모르겠어. 그것보단 달걀을 배달하는 요정이 훨씬 귀엽지. 사랑 같은 거, 싸구려 모텔에서 누런 벽지를 보며 엎드린 여자들, 알몸으로 파도를 불사르며 걸어가는 용기 같은 거, 팜플로나로 돌아가 다시 순례길을 떠나는 것도 모두 그대들의 다잉 메시지. 그리고 남는 건 소멸. 그러니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셀랍을 넣은 터키 아이스크림이나 먹자고! 그리고 내일은 내 마음을 살해할 거야. 자기 자신을 미워할 때도 성의 있게. 자, 해봐.
그래서 끝없이 추방당하는 신이 있다는 걸 아니? 빛으로 오고, 공기로 오고, 새의 목구멍으로 오는 것. 거대한 꿈에는 나도 있고 너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는 타락한 신이 있대.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은 거야? 검은 바다로 순환하는 피의 흐름. 우리는 명랑했는데, 조용히 거절했는데, 꽃송이가 가득했는데. 납처럼 무거운 삶도 살아볼까 했는데. 거짓말이야. 비밀을 뒤섞는 카드 패처럼 살아왔잖아. 정말 모르겠어, 올리브 나무를 심고 싶어. 나무의 그림자로 탄생하고 싶어. 쉬지 않고 불행해서 시를 썼는데. 우리는 어두운 바다에 기생하는 존재였네. 너를 발음할 수 없어졌네. 내가 죽인 신에게 심장을 맡겼는데. 치유할 수 없는 건 새벽의 나비였구나. 천사를 가엾게 여기지 않을래. 뚱뚱한 우울이 자꾸만 나를 갉아먹어. 별이나 달 같은 걸 사랑할 수 없어졌어. 잃거나 구원하거나.
가장 짜릿한 형태의 우울
어서 와, 플리즈 키스 미 너의 혀를 뱀처럼 감아 내 열망이 누추한 영역을 벗어날 때 오늘은 밀어를 나눌 수 있을까 같은 호기심이 생겼지 내 의사와 상관없는 네 생각은 언제나 근사해서, 그건 쓸데없이 철학적인 B급 정서와 완전히 달라서, 너는 사과처럼 달고 빨개서, 그래서 더 섹시하게 말할 수 있는데, 성호를 긋고 사실은 이 사랑을 허무는 데 집중하지
열병에 시달리던 밤, 일그러진 마음, 욕망의 지배자가 된다는 게 이런 걸까 미친 게 아니라 멋진 걸지도 몰라 하지만 네 인생을 책임질 만큼 난 건강하지 않아 나의 사랑이 쓸모없는 불가사리 같단 걸 완두콩을 세며 깨달았어 사형수처럼 매일매일을 새 기분으로 살았지 그래, 내가 괜찮지 않아도 네가 아프기 전에 버려줘 애가 닳아 듣는 장엄한 브람스는 늘 최선이지
피 묻은 팬티가 필요해 우리를 관통할 수 있는 네 번째 교향곡이 되어줄 거야 고양이 발자국 같은 찰나의 사랑이라니, 어째서 폐병처럼 바스러지는 걸까 내가 왼손으로 그린 별처럼 이 포옹이 그리웠어 왜 그렇게 띄엄띄엄 사랑한 거야? 인간의 선의를 믿었니? 눈이 녹아서 그렇게 다정했니 꽃이 펴서 잠깐 해이해졌니 있지, 나는 이 능소화의 향기를 채집해서 네게 주고 싶어
네가 내 여름을 통째로 삼켰으면 좋겠어
따뜻함이 멀어지는 걸 느껴 자신의 죽음 앞에선 누구나 우물쭈물하지 아픈 구멍을 메우려고 나를 버렸나 그 심정을 알아도 나는 다시 네가 좋아질지도 몰라 너를 발견하기 위해 꿈은 핏줄을 타고 상영돼 목소리는 소프트하고, 설탕 범벅을 한 입술로 말할 테지, 기똥찬 절망이구나,라고 우리가 전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손을 내밀게 이상하고 절박한 것들만 잡아
근데 언니, 나 숨이 안 쉬어져 새로운 폐가 필요해 비둘기가 날아가는 광장에 제대로 서 있고 싶어 인간의 죽음이 대체로 신성했다면 달랐을까 꿈속에서는 뭘 해도 나쁜 짓이 되었어 우울에 빠진 사람은 매력이 없다면서, 그런데 나는 너무 많은 우울을 매듭지었어, 이젠 안심하고 미움 받고 싶어 아무쪼록 나는 폐인과 섹스하는 편을 택할게 안녕, 사람!
이왕이면 에로틱한 지옥에 가고 싶어 덜 사랑받는 삶을 살아왔고, 상실한 제 세상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 모두가 나를 혐오하겠지 이제 와서 착하게 굴 거야? 그날 내게 투지 있는 년이라고 불러줘서 기뻤어 내내 경멸하겠다고 말해준 것도 고마워 벌써 시큼한 맥박이 느껴져, 이게 가장 짜릿한 형태의 우울이야 수없이 어긋나봐서 알아
서로를 해치지 않았는데도 인연이 끝나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