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었다 외 1편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이유가 생겨서 도서관에 갔다. 또 다른 어떤 이유도 함께 갔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도 따라나섰고

  셋은, 

  열람실에서 만났다.

  어떤 이유가 또 다른 이유에게
  무언가 물었다. 
  또 다른 이유가 대체 그걸 묻는
  진짜 의도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두 이유가 실랑이하는 동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만 
  아무 말도 못했다.

  셋은,

  주의를 받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는 
  억울했다.
  정숙한 열람실에서 

  셋 다,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는 
  열람실을 빠져나왔다.

  도서관을 나오는 내리막길에선 
  저 멀리 아웃렛이 보였다. 
  시립미술관 앞까지 오면 더 웅장해 보였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는 
  아웃렛에서 불쑥 나와 거리로 나서는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쥐고 있었다. 
  ​파란색 표지 귀퉁이가 심하게 까진 
  두꺼운 책이었다. 

  도서관으로 향할 것 같은 그 사람에게는 
  어떤 남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 거야

  아무것도 없는 이유는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러 
  책 든 사람을 무작정 따라나섰고

  예상했던 것처럼 그는 
  도서관을 향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이유의 티셔츠는 
  흠뻑 젖고 말았다.

  하루에 두 번이나 도서관 언덕을 오르는 건 
  몹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셋은, 

  열람실에서 만났다.

  창밖에는 아직까지
  비탈진 도서관을 오르는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날

 

  빵을 사러 나갔지. 빵 사러 온 사람들 많았지. 온통 빵을 사랑하는 손님들뿐이었다. 종일 빵집에만 머물렀다. 각자의 빵을 각자의 분량대로 테이블로 가져와서 뜯어 먹었다. 거리에는 갓 구운 빵을 나눠주거나 서로 다른 집에서 구입한 빵을 소분한 다음 종이가방을 흔들며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빵이랑 상관없는 사람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고

  빵집이 즐비한 새벽 거리는 한산했다. 빵 굽는 냄새가 가로수길에 퍼지는 가운데 빵 나올 시간은 한참 남은 것 같은데, 별안간 빵과는 무관한 사람을 마주치고 말았다. 한눈에 보아도 빵류를 피하는 사람.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빵을 사러 나왔는데 아직 문을 연 데가 없네요. 그 역시 잠깐 머뭇거리다가, 저도 빵을 사러 나온 거예요. 우리는 적극적으로

  열린 빵집을 찾아다닌다. 문을 걸어 잠그고 빵을 굽고 있는 환한 집들을 몇 개 지나친다. 이제 곧 빵을 고르게 될 것이다. 빵을 사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처음 하게 되는 경험. 그러나 소용없는 말은 서로 안 했지.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가로수길 더 깊숙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엇보다 빵을 사랑하는 여느 연인들처럼.
  
  

김동균

1983년 서울 출생. 2020년 《동아일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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