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먹은 식사 외 1편
오늘 먹은 식사
늦잠이 허락된 아침 궂은날의 예보가 울린다
이런 태풍은 처음이라고, 한반도를 관통할 거라고
불보다 무서운 게 물,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공복에 먹어야 할 ABC 주스와 나쁜 LDL을 낮춰줄 스타틴을 먹는다
내륙 남북 관통은 처음이라는 ‘카눈’은
초속 35미터 돌풍을 동반한 강한 태풍으로
지금 일본 규슈 서쪽 해상에서 12~16킬로미터 속도로 북서진 중이라는
방송이 연속 보도된다
두꺼워진 내 혈관을 생각하면서
블루베리 몇 알과 자몽 세 조각, 그릭요거트를 먹고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저울 위로 올라간 몸에서 하루 200그램 줄이기도 어렵다
내 것이 된 것들은 앙다문 입술처럼 단단해져서 쉽게 빠져나오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가 방송을 타고 두꺼워진다
느리게 달려오는 물 폭탄의 힘이 서서히 내일을 덮칠 것이다
중국 요임금 때 대홍수가 나 그 물이 하늘까지 흘렀다
우라는 사람이 아홉 개의 사람 머리가 달린 뱀을 죽여
그 물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 뱀은 자신의 몸으로 똬리를 틀어
세상과의 소통을 막고 땅의 산물들을 먹어 치우는 탐욕의 화신이었다
울타리를 칠 수도 없고 다른 곳으로 달아날 궁리도 없이
엎드려 계량할 수 없는 공포를 먹고 있다
검은 물은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박물관 찾아가기
─이집트 고양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유리 벽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말없이
뭔가 답답함이 들어차 있다
보이는 게 나인지 안 보이는 게 나인지
물 공기 바람
같은 눈높이로 어둠에 숨어 호흡을 가다듬었다
죽은 자의 책을 뚫고 수 세기의 시간을 넘어
나를 만나러 왔다 너는
슈페오스 아르테미도스, 부바스티스, 사카라1
오시리스의 관을 지키던 아이였나
지금은 침묵으로
어디서 너를 만난 적 있던가
유리 벽 너머로 너는 말을 걸었지
자꾸 돌아보게 되었어
수천 년 시간을 참았다가 우린 다시 만난 거야
삶, 죽음, 부활의 땅
시도 안 쓰는 요즘의 나는 시의 무늬가 희미해지고
노래도 없이 길을 잃는다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다
나일강의 범람으로 옥토가 만들어지듯
도도한 너를 만나 내 땅에도 비가 많이 내렸으면
뒤돌아보고 뒤돌아보고
영원한 삶을 꿈꾸는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다
자하
1967년 강원도 태백 출생. 2013년 계간 문예 『다층』으로 등단. 인천작가회의 회원, 수채화가.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