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외 1편
연인
1.
당신은
밝은 어둠에 휩싸인
이 숲을
숲의 고통과 오랜 격정을
닮았을 거야
나는
당신의 심장 한가운데
파란 풀씨 같은
쉼표를 심고
숲이 되기를 기다린 사람
그것이
푸른 혀 같은
커다란 잎사귀를 드리워
나를 적시는
꿈을 꾸며
2.
사람이
사랑의 한가운데서
사랑을 망각하듯이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을 흔들면서
바람이 되어가듯이
어느 날, 나는
숲을 잊고
숲을 잊었음조차 잊고
생각했지, 누구의 것일까
가늘게 떨리는
이 저녁을
부리로 쓰다듬고 가는
작은 새의 마음은?
3.
저녁의 숲은
빛으로 짠 스웨터 같아서
은빛 실로 된
저녁을 입고
새들은 한순간 날아오르고
나는
바람이 떨어뜨린
푸른 잎사귀에서
저녁이 건넨 이야기를
세세토록
읽으려 애쓰다가
알게 되지
여름의 눈부신 이마를 짚으며
화르륵 스쳐 가는
작고 투명한 불같은
사랑을
사랑
어둠을 가지려면
어둠보다 큰 보자기가 하나 필요합니다
나는 보자기에 어둠을 감쌉니다
둥글게 커다랗게 감쌉니다
보자기 속
어둠은 안 보이고
안 보이는 어둠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보자기에 손을 넣어 어루만집니다
둥글게 따뜻하게 어루만집니다
어둠은 개처럼 눕습니다
오후의 물처럼
거리에 산적한 고요처럼
소리 없이 엎드립니다
나는 살랑살랑 꼬리치는
어둠의 목을 묶습니다
풀어달라고 어둠은 컹컹대고
만져달라고 어둠은 낑낑대고
나는 어둠을 달래며 명령합니다
기다려 어둠!
(다시 말하지만, 보자기 속 어둠은 안 보입니다)
어둠은 안 보이고
무서워하는
어둠이 무서워서
나는 서둘러 보자기를 풀어봅니다
(보입니까?)
나는 나의 빈 목줄을 쥐고 있습니다
누군가 묶어주기를 기다리며
슬픈 꼬리를 흔드는
어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