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칠공부는 색칠놀이와 어떻게 다른가 외 1편

 

  색칠공부는 색칠놀이와 어떻게 다른가

 

  배움이 있을 것이다
  칸과 칸 사이에 눈엔 보이지도 않는 여백이 있어야 공존할 수 있기에
  자신의 가장자리를 자진해서 미리 조금씩 벗겨놓아야 하며
  그럼에도 인접한 이들과 서로 섞이게 되지만
  다성부의 합창 같은 거룩한 순간은 거의 오지 않고
  순간 손길이 엇나가 내 색을 상대에게 한 줄이라도 긋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으며
  때론 어느 한쪽이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각자의 크레파스를 문대며 서로를 덮으려 든다는 것을

  운 좋은 아이 몇만이 찢어지지 않은 종이를 들고 돌아간다
 
 
  태풍이 지나가고

 

  이유 없는 다가섬은 없지만
  태풍이 오면 모두가 일단 달아난다

  하지만 태풍이 지면에 가까워질 때
  한순간 머뭇거리는 걸 본 적 있는지
  태풍이 지면에 무릎을 꿇으며 몸부림칠 때
  그 안에 묶인 이들의 사슬이 서로 비벼지는 소리를 들어보려 한 적 있는지

  이곳은 독방이 아니며 소음은 가장 든든한 방음이라
  바람의 주먹에 쥐어진 자들은 바람 소리를 휘장처럼 감고
  그 어떤 비명을 질러도 된다
  번개가 등뼈에 꽂힌 것처럼

  태풍도 별을 어쩌진 못한다
  그럼에도 태풍이 지나가는 자리에 유성이 떨어지면
  그조차 그 안에 있는 나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태풍이 좁아지며 아귀힘이 더 세지면
  태풍의 눈 속에선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밖에선 태풍이 작고 약해졌다 한다
  
  

전문영

1984년 서울 출생. 2013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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