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외 1편

  

빛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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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카페의 불빛이 물속에 일렁여서
  그것은 걸어가는 사람들 같군요
  
  밤은 마음에
  발자국을 내며 걷기에 좋고
  
  내과의원 인공신장실 마음한의원
  한밤중에 투석 중인 사람도 있겠지요
  
  어두운 다리 밑에서 잠시 포개어져
  담뱃불을 나누며 당신과 나는
  
  정전으로 잠시 소등된 세상을 보았고
  신이 잊어버린 시간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키득거리며 속삭였지요
  
  잠시 멈춤의 시간들
  잠시 멈추면
  
  제빙기 제빵기 쇄빙선을 타고
  피에 젖은 기계가 멈추고
  공장이 멈추고
  
  우리의 시간이 멈추면
  잠시 죽은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춤을 출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언젠가 마주친 적이 있어요
  천국에서는 누구나 반말로 인사를 하지요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지요
  
  보이차 무이암차
  마음을 맑게 해주는 열 가지 차
  찻집을 지나며
  
  차 한 잔과 빵 한 조각에도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것인지
  
  저 먼 나라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에펠탑을 소등한대요
  불 꺼진 에펠탑 아래를 도는 사람들
  
  영국에서는 실내에서 우산을 펴는 것과
  사다리 밑을 지나가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생각한대요
  
  우산을 펴고 사다리 밑을 지나가면서
  중절모자 쓴 남자와 눈이 마주쳐요
  
  아주 희미하게 우리는 모두
  빛과 눈빛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흰 빵은 먹을 수 없는 것
  피에 젖은 빵은 삼킬 수 없는 것
  
  불 꺼진 강변을 사람들이 걷고 있어요
  다리를 지나도 다음 다리는 계속 이어지고
  
  들개가 찍은 곳에 발을 넣어보고
  움푹 파인 싱크홀에 어둠을 대어보고 그다음엔
  
  우리의 발이 함께 머물렀던 곳에 한 발짝
  다가가면
  
  빛이 너무 밝아서 빛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 들어요
  
  절망과 희망도 하나의 빛인 것처럼
  세계는 셔플
  
  얼마든지 신발을 뒤바꾸어 신고
  아이들은 뛰어가지요
  
  

우연한 열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데1
  
  나의 욕망은 구체적이고 사사롭지
  너와 시시각각 포르르 날아가고 싶지
  
  눈 녹은 자리에서 싹이 트고
  청소 노동자가 커다란 휴지통을 끌고
  지나가고 개는 훌쩍 뛰어 들어가고
  
  다양한 종이 우리를 넘나들지
  구두 수선공과 친구가 되고
  새들은 날아오르며 궤적을 남기네
  
  너는 내 손을 잡고 문득 흔들었지,
  우리가 각자 외로운
  구경꾼이자 싸움꾼이었을 때
  
  나무 위에서 새가 열매를 떨어트리자
  우리 손이 우연히 붉게 물들었다
  
  종이 흔들리는 순간을 좋아해
  지나가는 음악처럼
  
  너의 초라함을 좋아해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조형물처럼
  지나가는 경적처럼
  
  

주석

  1.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 책 제목에서 구절을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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