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외 1편

  
  

먼지처럼

  

  30년 일한 직장, 정년을 맞아
  책상과 주변을 정리했다.

  컴퓨터 하드와 업무용 노트북에서
  개인 파일은 USB로 옮기고
  SNS 계정은 닫았다.
  책장의 자료는 반납하고
  30권이 넘는 다이어리는 상자에 담았다.

  더는 쓸 일 없는 명함은 파쇄했다.
  천여 장의 다른 사람의 명함도
  파쇄기에 밀어 넣다, 순간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수없이 파쇄됐으리라.

  정리를 마치자 짐이 꽤 됐다.
  가벼운 상자 하나 들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담담하거나 휑한 뒷모습은 아닐 듯하다.

  모니터만 남고 말끔해진
  책상과 책장을 한 뭉치 물티슈로 닦았다.
  평소 손길이 안 닿던 깊은 곳에선
  먼지가 뭉쳐 나왔다.

  먼지처럼 나도
  사람들 손길 닿지 않는 곳에서
  가벼이 가벼이 엉기어
  잊히는 것만 같았다.
  
  

웃음

  

  〈웃음〉이라,
  서각 한 점 벽에 걸었다.

  아침저녁 눈에 담아
  하하하 웃는데
  싱거웠는지 시나브로
  뒤끝이 씁쓰름하다.

  괜하다 생각에
  떼려는데 무심히

  ‘웃음’의 ‘ㅜ’와 ‘ㅡ’, 양 끝을 맞잡은
  손의 모습이 새롭다.

  그때부터였던가

  아무 일 없이
  가까운 사람 손잡고 빙그레 웃는
  마음 새기는데

  공연하다 싶은
  나날이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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