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 증후군 외 1편

  

리플리 증후군

  

  불 좀 꺼줘
  눈을 감은 채
  잠꼬대하는 너의
  지극한 불면을 본다

  어쩌면 지금 깨어있는 건지도 몰라
  잠꼬대가 아닐지도 몰라
  사랑 어쩌고를 중얼거리던 방금처럼

  365일 내내 트리를 치우지 않는 집이 있다
  그런 집도
  일 년에 한 계절쯤은 타당해진다. 는
  그런 믿음으로

  내일은 맑고 화창할 거라는 일기 예보에
  미리 우산을 챙기는
  너의 자세를 사랑하게 된다. 는
  그런 믿음으로

  8월에 내릴 수밖에 없는
  함박눈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선을 넘은 농담처럼
  그림자의 윤곽이 번져 나가고
  어둠이 투명해지는 동안

  저기 현관
  자동 센서 등의 불빛이 꺼지는 순간을
  자주 목격했다

  

  

라 토마티나

  

  토마토에 맞으면 되게 아픈 거 알아요?
  멍도 들었다니까
  오래전 토마토 축제에 다녀왔다던 사람이 말했다

  최초의 토마토는 암살재료였대요
  내가 중얼거리자
  하지만 때려죽이는 용도는 아니었죠
  오래전 토마토에 맞아 멍들었다던 사람이 말했다

  서로 토마토 전문가를 자처하며
  끊임없이 파스타 포크를 돌리는 동안에도
  접시 바닥은 도통 뚫리지 않는다

  현관 앞에 잔뜩 쌓인
  저 새빨간 덩어리들이 막막하다

  토마토는 무성하고
  무성할수록 무성의해지는 순리에 동의하며
  우리는 사뭇 토마토에 골몰하는 표정을 짓는다

  꼭지부터 따야 해요
  꼭지가 달려 있으면
  토마토가 착각하게 되니까
  헛된 희망은 좀 잔인하니까
  인도적으로 보관하자구요
  홀 토마토로 만들어도 좋구요.
  손끝이 노란 사람이 말했다

  그건 토마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안 먹을 토마토인데 나중이라고 먹을까요……
  나는 토마토가 듣지 못하게 소곤거렸다

  그러나
  이렇게 잦은 토마토는 좋지 않습니다
  얼굴이 하얘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낯빛이 붉은 사람이 말했다
  미리 알았다면 입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안색을 들킬 때마다
  어디선가 케첩 통이 날아올지도 몰라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아무래도
  누군가를 때려죽일 수 있을 만큼
  토마토가 단단하고 아삭하게 개량되기 전까지
  대책이 필요하다

  토마토는 거꾸로 말해도 토마토니까
  토마토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진다고
  틈메이러,라고 불러야 한다고
  그것이 오늘의 결론이었는데

  너는 토마토를 먹을 자격이 없다고
  식탁보를 붉게 물들인 사람이 말했다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현관문 손잡이를 넝쿨처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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