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외 1편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눈 덮인 산을 올라가다가
  철컥, 발목이 덫에 걸린 적이 있어요
  마을 사람이 산짐승을 잡으려고 놓은 덫이었지요

  눈을 헤치고 간신히 덫을 풀긴 했지만
  다친 발목에는 피가 흘렀어요
  절뚝거리며 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눈 위의 발자국마다 피가 묻어 있었지요

  그 후로 내 속에는
  두렵고 상처 입은 짐승이 살아요

  발 플럼우드는 세 번이나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했다고 해요1

  우기의 강을 거슬러 가던 그녀는
  카누를 타고 혼자서 너무 멀리 가버렸어요
  악어의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지요

  자신의 몸이 육즙 가득한 고기라는 사실을

  눈꺼풀 속에서 빛나는 금색 눈동자,
  악어의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악어는 그녀의 몸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자만과 환영까지 덮쳐버렸지요

  악어에게 세 번이나 물어뜯긴 대가로 플럼우드는
  먹이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어요
  먹이로서의 인간에 대해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수없이 고기를 썰고 굽고 씹었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
  언제라도 다른 존재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 떨고 있는 한 마리 짐승,
  또는 한 덩이 고기가 되어
 
 

  물의 눈동자가 움직일 때

 

  3천 년 전쯤 투명한 수정 속에
  한 방울의 물이 갇혔다

  이 수정은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되었다

  시간이라는 단단한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한 방울의 물

  빙하에 갇힌 기분이었을까
  아니,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

  손으로 수정을 들어 올리자
  그 속의 물방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투명한 수정 바깥을 두리번거린다

  물방울은 3천 년 전의 세계를 기억하고 있을까

  칠레 남쪽 파타고니아 원주민은
  바다를 가족처럼 여기던 물의 유목민들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믿었던 그들은
  조상들과 교감하려고 자신의 몸에 별을 그렸다

  물의 유목민들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아타카마 사막의 수정만이
  그 까마득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뿐

  지구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자
  가장 건조한 사막에서 온
  물방울 화석

  온몸이 눈동자인 물방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산문집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예술의 주름들』,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명의 바깥으로』 등이 있음.

  
  

〈주석〉

  1. 발 플럼우드, 『악어의 눈』, 김지은 옮김, yeondoo,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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