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미풍 속으로 외 1편
노인은 미풍 속으로
미루나무, 미루나무, 나는 미루나무를 좋아해
뭘 봤어, 미루나무 가지에 걸린 뱀 허물을
그걸 보고 놀라서는
다리 아래로 신발 한 짝을 떨어뜨렸는데
발소리 하나, 숨소리 하나, 내 나이는 멈췄지
잃어버린 신발을 찾다가 열세 살에 멈췄지
청보리밭에서 빨간 피리를 불며 누가 오는가
붉은 소나무 사이
앵두처럼 또렷한 눈동자로 누가 노려보는가
물속에서도 불타는 미루나무
미루나무, 미루나무, 꺼지지 않는 초록
커다란 뼈를 발견하고
두려워서 기쁜 듯이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처럼
미루나무, 미루나무, 노인이 몸을 떨며 말했네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이 여기 묻혔다고
자연스러운 인생
매미 소리 시끄러워
위를 보니
나뭇가지에 고운 새
매미의 몸통을 쪼고 있다
여름날 찬란한 물가에서
물이 얕은 줄 알고
들어갔다가
발이 닿지 않아 화들짝 놀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