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살았다 외 1편

  
  

너무 오래 살았다
  

  어디쯤이었을까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해봤던 미팅
  그날 만났던 소녀와 돈가스를 먹었던 곳
  그 소녀는 크림수프를 시키고
  나는 야채수프를 시켰던 곳
  그 경양식집
  어디쯤이었을까
  B여고 J씨 성을 가졌던 작은 소녀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은 아직도 선명한
  그 작은 소녀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그 작은 할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시라고 우기며
  우스운 노래 가사를 끄적였던
  눈 감고 기타 치던
  열일곱 눈 맑은 소년은 어디 가고
  어깨 굽은 중늙은이 하나
  느닷없는 가을비를 맞으며
  애관극장 앞
  답동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비에 젖은 은행잎 보도 위로
  가라앉고 있다
  우산도 없는데
  
  

천국의 하루 2
  

  오늘
  당신이
  무사해서
  내가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오늘
  당신이
  무사해서
  내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
  당신이
  무사해서
  내가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세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오늘
  무사한
  당신들이여
  고맙고
  또 고마운
  오늘
  무사한
  당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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