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사 외 1편

 
 

  낭독사

 

  물고기가 눈을 뜬 채 지느러미를 세우고
  수초 가득한 수족관
  물속을 유영하는 사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며
  글을 읽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손에서는 땀이 고였다

  밝은 쪽을 가리킬 때마다
  어둠이 감지되었는지
  고뇌로 물든 표정이 잠시 멈칫했다

  점자를 짚는 그도
  가끔은 여기까지 온 자신의 이력을
  짚은 적이 있었다

  칠흑의 밤이었는지 모르는 길을
  끝자락에서 가장자리를 더듬어
  걸어온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길이
  보이는 길보다
  더 고통스러운 길이 있다는 것을

  그는 항상 추운 곳에서 왔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저녁을 닮은 어두운 방향을 걸어왔다

  점자들을 매만지는
  천수의 손은 숨을 토해내듯 어둠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두고
  무상하게 추운 방향으로 뻗은
  길을 따라 검은 글자를 짚어 나갔다
 
 

  중고차 바퀴 갈기

 

  차를 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동승자가 넌지시 말할 때
  난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보험비 인상을 우려하고
  무사고 운전 기록을 깨고 싶지 않아서

  그보다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덜컥거리며 낡아가는
  부품 교체 비용으로 인하여

  브레이크가 닳을 때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꺼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피로한 정신의 소용돌이
  그나마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하지만 바퀴를 갈 때마다
  끝없이 굴러가야 하는
  바퀴의 정신세계를 헤아리는 소모야말로
  나의 오랜
  습관이 된 지 오래

  바꿔야 할 것은 나의 정신세계인지 몰라
  새로운 길은 어쩌면
  네 바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쩌면

  안락을 구하는 정신에 취한 길을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것만큼이나
  앞차와의 거리를 벌리며
  속도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낯선 다리를 건너는 일이라는 것을

  나와 내 차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네 바퀴를 갈기도 전에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럴 거야
  네 바퀴가 다 닳도록 굴러가야 하는 길은
  끝없이 어둠을 굴리는 길이라는 것을
  
  

이세기

1963년 인천 출생. 199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먹염바다』 『언 손』 『서쪽이 빛난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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