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 외 1편

  

교신

  

  지면이 잔병치레 중이다
  스케이트보드가 스케이트보드 한다

  돌 위에서 나는 자주 아파
  돌 밑에서 헹가래
  손등이 닿는 천장은 바퀴

  콘크리트 절벽
  진자운동
  공중으로 3센티미터 떠올랐을 때 멈춰

  나는 나의 아들을 보듯 나를 본다

  그러니까
  저 위에 나 세워두고 가자
  영원히 스케이트보드 타게 두고

  왕복한다는 건
  걸음을 잊는다는 뜻

  백발과 흑발 사이
  회사는 터지고 아파트는 무너지고
  아내가 울면서
  아들 어디야? 지금 어디야?

  저 보드 타고 있어요
  아직 안 다쳤어요

  말하는 순간
  미래가 나를 넘어뜨린다

  나동그라지며
  야 김선아! 괜찮아?
  아 괜찮다고 안 다쳤다고

  피 흘리는 내가
  피 토하는 내게 덧난다

  깨진 무릎에 돌 하나 끼우고
  집에 가자

  너 이거 다 곪는다

  (또 잔소리……)

  

  

은신

  

  배가 멀리서 오는 것이 좋았다. 너는 난시니까 네 눈에 집어등이 좀 번져 보일 것도 좋았다.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어서 좋았고

  그냥 안다는 기분이어도 좋았다. 나는 항구가 좋았다. 항구에서의 걸음걸이가 좋았다. 바닥에 약간 달라붙는 신발, 젖은 시체 냄새가 감추는 것들.

  자꾸 멈추게 되는 것이 좋았다. 여기까지만 걸을 수 있고 여기부터는 빠져 죽을 수도 있는 그런 법칙이 좋았다. 불가능이 어떤 기도를 가능케 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육지가 예뻤고 눈과 코에 비늘이 들어차듯 숨이 막혔다.

  우리는 여기에 왔기 때문에 오지 않아도 좋았다. 날이 흐려서 저 배가 우리를 보지 못할 것도 좋았다. 이 추위에도 얇은 코트 입은 너를, 손톱이 유독 분홍색인 너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곳이, 배의 난시를 유도하는 안개가

  입김을 호호 부는 네가 항구에 속해 있어 좋았다. 입김은 아무것도 가릴 수 없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추위 탓으로 돌리며, 우리가 우리에게 임박해가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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