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가시연습지 외 1편

 

  경포가시연습지

 

  고기압 새파란 겨울밤의 하늘처럼
  무수한 뭇별들로 총총하다
  무리를 지어 몰려 있는 것도 있고
  저만치
  저 혼자 큼지막하게 수염뿌리를
  진흙 속에 박고 있기도 하다
  한여름 무성했던 잎자루를 매달고
  마른 줄기가 꺾이며
  흑색의 알알이 박힌 자글자글한
  연밥을 매단 채
  기도하듯
  그대로 얼어버린 연못 위 풍경
  마치, 수천수만 마리의 새떼들 같기도 하고
  고통 속에 매달고 늘여진 탯줄 같기도 한
  마른 잎맥들의 날개들
  알 수 없는 상형문자를 그려놓은 듯
  거미줄처럼 얼크러진 무수한 그림들
  결국 광야에서
  땅에 엎드려 무릎이 깨지도록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겨울잠의 씨앗이
  어둠 속에서
  발아를 꿈꾸는데
  그것은 1년일 수도
  그대로 5백 년이 될 수도 있다
 
 
  

  얼린 꽃

 

  식물 조각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선보인
  일본의 꽃 예술가 아즈마 마코토가
  얼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은
  얼린 꽃, 꽃의 무덤을 탄생시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나는 시들어버리는 꽃을 사지 않고
  시들지 않는 조화
  흰 장미를 한 아름 사다
  십자가 아래
  거울 위에 걸쳐놓기도 하고
  거울에 거꾸로 붙여놓기도 했다
  누군가 말했다
  조화는 죽은 이들을 위한 꽃이라고
  꽃의 무덤
  시드는 것과 시들지 않는 것
  삶과 죽음 사이
  먼 하늘을 지나는 달밤 같은
  삶이 시이고 시가 삶인
  온 세상 속절없이
  시들어가는 꽃송이, 꽃잎들이
  꽃의 무덤인 것
  빈 무덤인 것을
  
  

천금순

1951년 서울 출생.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 시집 『두물머리에서』 『아코디언 민박집』 『직소폭포를 보다』 등이 있음.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