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외 1편
값
왜
저런 걸 끌고 여기까지 온 거지⋯⋯.
지금 신고 있는 빈티지 부츠에 대해 당신이 질문한다면
집요하게 눈길을 보낸다면
나는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에
누가 신발을 버리면서 돈까지 받았다고
버려진 신이 덜 부끄럽도록
배려하는 척하면서
돈을 받았다고
나는 부츠 밑창이 썩은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샀다
내 발을 길들이려는
과거에는 살아서 스스로 움직였던 가죽의
방어 자세나
본능을 이해하려 들면서
절뚝이면서 학교에
꽃집에 갔다
신발을 어르고 달래는 법을 배웠다
얘야
나는 버리는 사람이 아니란다
아니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더 배울게
꽃집에서 사귄 시클라멘 화분은
처음 만났을 때 내 멋진 신발을 칭찬했고
두 번째엔 못 본 척했고
세 번째엔 문득 울었다
넌 걸을 수 있지
너 같은 인간들은 걸을 수 있어
그래서 멀리 떠났지
내게 오지 않았고
넌 오지 않았어
넌 오지 않을 거야⋯⋯.
시클라멘은 아주 사랑스럽고
뿌리와 잎, 줄기 전체에 독을 가졌다
나는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화분을 샀다
모든 것을 알고도
벌레 많은 화분에 뺨을 비볐다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왜 이렇게 사랑스럽게 만들었니
사기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춤을 추었다
기쁘게 기쁘게
나는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
그러면 언제부터인가 정말로 발이 아프지 않았다
그 화분은 우리 집에서 죽었고
난 이 이야기를 돈 받고 판다
살면서 내가 배워먹은 것이 이뿐이니까
돈을 받을 때
너 사랑을 했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피폐해서 나는 신발을 벗다 말고 주저앉아 신나게 울었다
그래 맞아
내 발이 이렇게 생겼었지 확인할 수 있었던
어떤 하나뿐인 꽃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멍청이
미로가 있고
모두 다 아는 규칙 앞에서 나는 뜬금없어졌어 가령
젖은 상처는 드라이어의 찬 바람으로 말리는 것이라든가
때때로 인사가 되고 욕이 되는 손가락 모양
결혼식장에서 재수 없는 하객이 되지 않는 법이라든가
언제 어디선가 모두가
손을 잡고 정한 규칙을
알려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신비함 속에
나는 일단 걸었지
혼나면서 알아보는 것이 내 길이었다
막다른 길에서 쥐어 터진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프다는 감각 정도였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엄마는 멍 크림이라는 것을 발라주며 추궁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무언가를 숨기는 흠 많은 사람이 되어서
익숙한
뉘앙스의 눈초리를 견뎌야 했고
너 아직도 술 먹고 넘어지지
너 어디선가 무릎 꿇었지
보잘것없는 남의 몸뚱어리 앞에서 물건처럼 자신을 내던진 게 너도 부끄럽지
그러니까 말 안 하겠지
나도 알지
아는 척하는 작자들을 피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긴 비옷을 사 입었다
맑은 날에
비옷을 입지 말라는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라는 말줄임표가 질질 나의 뒷덜미를 끌고 가던 날에
옷이 예쁘네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거짓말이라 생각했고
당신 옷이 예쁜 거 알고 있죠?
두 번째부터는 민망하게 웃었어
웃는 얼굴이 예쁘네요
당신이 말했을 땐 다 털어놓고 싶었지
나의 팔다리에는 언제나 멍이 들어 있는데요
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과
왜냐고 물어보지 않는 사람들
나의 진실은 그들 중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거무튀튀한 덩어리였는데요
덩어리를 애써 포장했지만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나도 알 수가 없었어요
알려줄 수 있나요? 저도
다치지 않고 헤맬 수 있나요?
그리고
저는 정말 예쁜가요?
나는 또 맥없이 이상한 말을 할 거야
당신이 귀띔해주는 길목의 난처함과
거기에서 한 번 더 누추해지는 나의 덩어리를
예상하면서도
세상에 그것도 예상한 적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