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하기 기억되기 외 1편

  

가만하기 기억되기

  

  로로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쉬고 싶어
  영원히

  나는 낮게 깔린 로로의 그림자 밖에서
  로로의 말을 바꿔 적는다

  오래?

  로로는 언제까지 쉬려는 걸까 로로가 끝내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로로를 무서워하게 될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로로 몰래 나는 입 안에서 우리를 발음해본다

  나는 버려진 위성처럼 로로를 배회한다 로로의 공간 로로의 숨 로로의 혼잣말
  바깥에서 나는 로로를 적고 로로를 사랑하고…… 로로를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하고……

  우리가 사랑한 적은 있을까 로로에게 물을 수 없어서 나는 사랑의 다른 형태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빛이 사라진 공간처럼 묵음 처리된 흑백 영화처럼 울멍줄멍한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어디서부터 사랑이고 어디까지 로로가 되는 거지 다 나눠주고 나면 나는 어디에 놓이게 되는 거지 사탕을 깨물면 날카로운 단맛이 혀를 쪼아 얼얼한 것처럼 깨어진 로로가 자꾸 심장을 두드리는데

  이 작은 방과 이 작은 마음과 이 작은 혈관덩어리를 양보한다고 로로가 기뻐할 것 같진 않다 사실 내가 양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로를 받아 적고 그 옆에 나를 흘려 쓴 일이 나와 로로 사이에 일어난 전부다

  로로를 훔쳤으나 로로가 온전할 뿐이다

  로로는 파수꾼이고
  나는 파수꾼의 낮잠을 방해하는 새다

  로로가 사라지면 나는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지면 로로는 잠들 수 있을까

  새로운 의자에 놓인
  새로운 로로가 나를 올려다본다

  쉬고 싶어

  로로는 완곡하게
  나를 단어처럼 부르고

  외딴 섬 절벽에서
  등대에서

  나는 굴러
  굴러 사라지고

  로로가 거기 남는다

  로로가
  받아 적는다

  

  

또 봐요 다음에

  

  죽은 나무가 입구가 된
  숲에서

  줄에 묶인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따금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죽은지도 산지도 모르는 나무와 사진을 찍는다

  계절감이 사라진 숲은 넓은 관처럼 고요하다
  나무 위에 내려앉은 빛이 굴절하며 출구로 뻗어나가는 동안
  나는 숲길을 다 걷고 돌아와
  입구부터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밝은 옷을 입고 숲을 걸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출구를 발견한 사람이 소리치고
  안내문에 따라 천천히
  사람들의 숨이 빠져나간다

  나는 그곳에 서서
  빛이 다 모일 때까지
  네가 도착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살아있다가

  죽은 나무에 손을 올리고
  빛으로 가득한 장례를 치른다

  바람이 몇 차례 손을 감쌌다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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