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

  

  나흘간 밤낮으로 비가 쏟아지더니 무더위가 이어졌다. 너는 퇴직금으로 지난여름 봐두었던 무풍 에어컨을 들일까, 고민하다가 주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 주문하면 설치까지 두 달이 걸린다고 했다. 덥고 습했다. 너는 냉동실에서 얼음 틀을 꺼내 비틀고 흔들었다. 조리대 위에 올려두고 엄지와 검지로 얼음조각을 하나씩 유리잔으로 옮겼다. 벨 소리가 들렸다. 기현이었다. 얼마 만이더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12월이었으니까, 8개월 만인가. 너는 휴대전화 화면에 뜬 기현의 이름을 보며 생각했다. 늦은 밤 통화하면서 손등이 시렸던 기억이 생생했다. 1년에 한두 번 먼저 연락하는 쪽은 기현이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현은 계속 대화하고 있었다는 듯 그건 그렇고 쉬는 날이 언제냐고 물었다. 너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정말? 그럼 내일 시간 괜찮아?”
  네가 답하려는데 기현이 고쳐 물었다.
  “아니다. 내일은 내가 안 되네. 모레는 어때?”
  “모레, 모레⋯⋯.”
  너는 별다른 약속이 없었지만 뜸을 들였다. 기현을 만나는 일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요청을 유예하거나 거절할 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는 기현에게 조금씩 빚지는 마음이 있다고 내게 말한 적 있었다.
  “괜찮아. 근데 왜? 무슨 일인데?”
  네가 되물었다.
  “만나서 얘기하자. 만나서. 아침에 집 앞으로 갈게. 아직 거기 살지?”
  기현이 제안했고 너는 아직 거기에 있다고, 그날 만나자고 답했다. 전화를 끊자 얼음 틀 안에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조리대 위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너는 일을 그만두었지만 계속 그곳에 살았다. 가게 문을 닫은 건 두 달 전이었다. 햄버거를 주력으로 파는 음식점이었다. 직영으로 운영되던 매장이었는데 대형 프랜차이즈와 수제 버거 가게에 밀려 손님이 줄고 매출이 떨어졌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매출은 다시 오르지 않았다. 본사에서 이런저런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키오스크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쿠폰을 두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광고 모델 겸 사외 이사로 활동하던 배우가 음주 운전과 마약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반등의 기회도 완전히 사라졌다. 너는 부매니저로 일한 탓에 다른 지점에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두 번 묻지도 않았다. 전망이 어두웠다. 어차피 망할 회사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쉬지 않고 도합 10년을 일했으니 1년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디론가 떠날 작정이었다. 바다를 보러 가고 등산도 하고 둘레길도 걸으면서 낯선 길을 찾고 비도 좀 맞고 일출과 일몰을 보면 뭔가 새로운 걸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온종일 주문을 받고 패티를 굽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응대하느라 놓쳤던 다른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만두고 나서야 그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없다는 걸 알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너는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무미하고 무취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계획대로 쉬는 일에 집중했다. 이런 적 없잖아. 애초 이렇게 사는 게 계획이었다며 너는 스스로를 설득해나갔다. 아무 일 하지 않는 것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이지 싶었다. 두 달이 넘도록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다. 고기를 익히거나 원두를 볶거나 감자를 튀기거나 팬케이크를 굽는 냄새 대신 집 안에 고인 냄새만 맡고 지냈다. 그런 냄새만 맡고 있자니 겁 많고 온순한 영장류가 된 기분이었다. 그건 누군가 자신을 붙잡고 길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너는 의심도 해보았다. 동네 어귀에서, 네가 머무는 집 이곳저곳에서 계속 맴도는 이름, 떠오르는 형상이 네 머릿속에 있었다.
  너는 나를 잊지 못했다. 완전히 잊자고 마음먹은 날은 여봐란듯이 내가 등장하는 꿈을 꿨다. 나는 조금 우쭐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직 여기에 있었다. 다투고 울던 밤에 둘 다 정수리까지 화가 차올라 말없이 걸었던 길을 억지로 돌이켜보면서 우린 어울리지 않았다고, 나쁜 날이 이렇게 많았다는 걸 머릿속에 반복해서 입력하며 너는 나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오리고 지운 자국은 되레 또렷이 남기 마련이었다. 너는 너의 잘못을 응시하며 반성했다. 그건 나쁜 감정이 아니었다. 너는 마음 한편으로 안도했고 안심했다. 그렇게 잊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갔기에 너는 얼마간 나를 추억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일에 시달리고 서로에게 지쳐서 껍데기만 남은 채 집으로 돌아온 날에도 서로의 눈물을 끌어안았듯이 내가 떠난 뒤에도 너는 나를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네 통장 잔고는 퇴직금 탓에 부풀어 있었지만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감산하면 금방 사라진다는 걸 알았다. 너는 불안했다. ‘마흔이 넘으면 있잖아. 이런 데서 서빙할 수도 없어. 카운터에 설 수도 없고. 화장실이나 주방으로 가야 해.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거 같아?’ 며칠 전부터 너는 본사 1층 화장실에서 누군가 내뱉은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건 너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너보다 늦게 화장실에 들어온 남자는 자신을 다그치듯 욕설을 섞어가며 중얼거렸다. 너는 불안할 때마다 그날로 돌아갔다. 화장실 첫 번째 칸에서 땀 흘리며 좌변기에 앉아 있던 10분 남짓. 종일 속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물 내려가는 소리와 세면대에서 물줄기가 세차게 뿜어지던 소리와 핸드 드라이어가 윙윙거리며 작동하던 사이사이 너는 남자의 차가운 음성을 들었다.
  그 무렵부터 너는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유튜브에서 검색했다.
  자연인, 귀농 귀촌, 자급자족, 미니멀리즘, 생존, 서바이벌⋯⋯.
  검색어는 매번 달랐다. 폐가를 개조해 새집으로 만들고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찬 마당을 치워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영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미소 지었다. 그들은 과거와 비교해 현재 삶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설명했다. 화면이 초록색으로 가득 찰 때마다 너는 감탄했다. 영상 중간이나 마지막 자막이 흐를 때 해당 지역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나오면 그걸 기억해놓았다가 인터넷에 검색해보곤 했다. 위치라든가, 매매나 전세 시세 같은 것을 찾아봤다. 그렇게 도시에서 살 이유도, 여유도 없다고 느끼면서 관련 영상을 연속해서 실행하다 보면 차츰 안정을 되찾다가도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너는 강한 예감에 부딪쳤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을 금방 떠나진 못할 거 같다고.
  “우재야, 너는 영역 동물 같아. 왜 이렇게 흔적을 남겨? 누가 쳐들어올까, 불안해? 네 것을 빼앗아갈까봐, 그래? 네가 한 짓이 걸릴까봐?”
  조명을 끄지 않거나 음식을 조금씩 흘리고 다니는 너를 보며 내가 말했다. 나는 네가 지나간 길을 쫓으며 불을 끄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손아귀에 담으며 너의 불안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틀 뒤, 기현이 네 집 앞까지 차를 끌고 왔다. 좁은 골목이 가득 찰 만큼 큰 대형 세단이었다. 일방통행로였고 벽에 바짝 붙여도 차가 지나갈 수 없었기에 기현은 골목을 그대로 빠져나와 네가 일했던 건물 앞에 주차하고 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매장 앞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정체 모를 비닐봉지를 들고 네가 나타났다.
  “차 좋네.”
  조수석에 올라타며 네가 말했다.
  “이 차 처음 타보나?”
  기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처음이지.”
  기현의 부모는 서울 근교에서 오랫동안 숙박업을 했고 기현은 할아버지에게 상속받은 서촌 한옥을 리모델링해서 사업을 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 기현이 너에게 사진을 보여준 적 있었다. 중정이 있는 디귿 자 건물은 작고 낡았지만 운치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라고 했다.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고택이 12억, 13억씩 한다니 너는 믿기지 않았다.
  “공사는 끝났어?”
  너는 기현의 사정을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카페를 오픈할 계획인데 구청에서 허가가 늦어져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 땅에 무언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유물 조사인가 뭔가를 해야 한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라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카페 운영에 대해 우재에게 이것저것 물어왔고 너는 아는 대로 답했다. ‘필요하면 날 고용해.’ 너는 농담과 진담을 적절히 섞어서 말했고 기현은 알았다고 했다. 그 뒤로 첫 만남이었다.
  “아, 그거. 공사는 끝났고, 돌리고 있어. 카페 아니고 에어비앤비. 손님이 문제긴 한데 뭐 어쩔 수 있나. 돌려봐야지. 어차피 외국인 대상으로 하는 거니까. 성수기라 그런지 아직은 할 만해. 여차하면 카페로 바꾸려고.”
  “카페도 괜찮지.”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쓸 게 많겠네.”
  “회장님 눈치 보는 거지 뭐. 그래도 세무사랑 컨설팅 업체 끼고 하니까 수월해. 청소도 용역한테 맡기니까 간단하고.”
  기현은 자신의 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고등학생일 때도 그렇게 불러서 익숙했다. 기현의 가족은 오래된 소기업처럼 체계가 있었다. 가끔 기현은 회장님에게 골프채로 맞는다고 했다.
  “그렇지. 그게 확실하지. 오토로 돌리는 거.”
  너는 기현의 말을 거들었다.
  “그건 뭐야?”
  기현이 네가 들고 있던 봉지를 건드렸다.
  “아, 사과. 먹고 출발하려고.”
  너는 봉지 끝을 둘둘 말아 매듭을 풀고 사과 한 조각을 기현에게 건넸다.
  “여전하네.”
  “뭐가?”
  “예전에 급식 시간에 모닝빵 나오면 케이에프씨에서 가져온 케첩 나눠주고 그랬잖아.”
  기현은 사등분된 사과 조각을 우물거리다가 반쯤 먹었을 때 말했다. 너도 같이 사과를 씹었다.
  “그랬나.”
  케이에프씨 남부연산점은 네가 처음으로 알바를 한 매장이었다.
  “케첩 빼돌린 거 들켜서 점장인가 누구한테 혼났다며.”
  “내가 그랬어?”
  “그래서 우리가 가서 매상 올려주고 그랬잖아. 기억 안 나지? 넌 너한테 불리한 건 기억 못하더라?”
  “사는 게 바쁘니까.”
  너는 사과를 우물거리며 핑계를 댔다. 과즙이 새어나와 글로브박스에 튀어서 옷소매로 얼른 훔쳐냈다. 다른 한 조각도 나눠 먹었다. 너는 여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보단 곤란한 마음이 컸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너는.”
  기현은 남은 조각을 거의 다 씹은 뒤에 다시 말했다.
  “너는 아주 그만둔 거야?”
  “어, 당분간 쉬려고.”
  네가 답했다.
  “일하던 데가 어디라고 했지?”
  “저기야. 보이지? 매장 철수하면서 그만뒀어.”
  네가 왼팔을 정면으로 뻗으며 말했다.
  “맞다. 여기 맞네. 마약 버거였지.”
  기현은 운전석 쪽 창문으로 매장 조형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 뜯겨나가고 감자튀김 모양의 길고 끝이 뾰족한 패널만 몇 개 남아 있었다.
  “그래, 넌 좀 쉬어야 해. 잘됐네. 나랑 여행이나 좀 다니자.”
  너는 기현과 같이 가는 여행을 십 대 이후로 생각해본 적 없었다. 둘은 너무 달랐다. 하교 후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피시방에 몰려다니며 포트리스나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때를 제외하면 관심사가 같은 적은 없었다. 두셋씩 편을 나눠 동맹을 맺고 상대를 전멸시키거나 개별 전투를 해서 최후의 1인이 되는 임무를 수행하는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기현과 함께 있으면 몸은 편하다고 생각했다. 대형 세단의 조수석은 흠잡을 데 없이 안락했고 에어컨 바람은 시원했다. 이른 아침부터 쪼아대던 햇빛도 조수석에 앉아서 보면 싱그러워 보였다.
  “오늘은 어디 가는 건데?”
  “내가 말 안 했나?”
  너는 사과가 들었던 봉지를 반듯하게 접어서 콘솔박스 옆에 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은 아니고⋯⋯.”
  기현은 말을 끊었다가 네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을 꺼냈다.
  “원영이 요새 좀 힘든가봐.”
  “송원영?”
  “응. 걔가 너 보고 싶대.”
  “왜?”
  “일단 출발부터 하자.”
  “걔가 어디 있는데?”
  기현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도착까지 4시간 30분. 무성교도소였다.
  “송원영이 교도소에 있어?”
  “그렇게 됐대. 둘이 못 본 지 오래됐지?”
  “결혼식이 마지막이었을걸.”
  기현은 부드럽게 가속페달을 밟았고 떨림 없이 차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6년 됐나?”
  “벌써 그렇게 됐구나.”
  네가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결혼식 전에 애인을 소개시켜준다며 별안간 카페로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너는 플레인 스콘과 사과잼을 서비스로 건넸는데, 원영과 그의 애인은 스콘을 절반도 먹지 않고 버렸다. 그 절반을 티스푼의 볼록한 면을 이용해 꾹꾹 눌러 가루로 만들고 냅킨으로 덮는 걸 봤다. 너는 다음 날 원영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결혼식에서 축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님이 끊이지 않아 회신이 늦어졌고 그사이에 원영은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3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교도소는 왜 갔는데?”
  너는 놀라지 않았다. 원영이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여자를 만났는데, 그게 잘못된 거지.”
  “와이프가 왜?”
  “와이프는 아니고. 이혼했거든.”
  “언제?”
  “좀 됐어.”
  너는 뭉개진 스콘과 뜯지 않은 사과잼을 떠올렸다.
  “채팅앱에서 만난 여자애들이랑 놀았대.”
  기현의 차는 반포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정체가 계속됐다.
  “거기까진 문제가 없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나봐.”
  “그다음은 또 뭐야.”
  “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기현은 옆 차선에 작은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갔다. 경적이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계속 차선을 바꿔가며 운전했다. 다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게 잘못된 거지.”
  원영은 동일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실형을 받았다고 했다.
  “얼마나?”
  “1년. 2심이 다음 달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지. 변호사도 이대로는 힘들다고 겁을 주나봐.”
  “뭘 얼마나 죄를 지었길래, 그러고 사냐.”
  너는 가슴이 답답했다.
  “넌 어떻게 알았는데?”
  “변호사 통해서 연락이 왔어. 접견을 와달래. 너랑 같이.”
  “날 왜?”
  “그냥 보고 싶은가보지. 사람이 혼자 있으면 왜 그런 거 있잖아. 말은 안 했겠지만 원영이 널 특별하게 생각하잖아.”
  너는 기현과는 달리 원영의 이야기는 내게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원영은 군대 행정실에서 근무하며 대학 등록금을 빼돌렸다거나 출장을 핑계로 법인카드로 크게 한턱을 냈다거나 유흥업소에 들락거린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다. 네가 원영과 멀어진 건 그 때문이었다. 너는 원영과 같이 어울리면서도 거리를 뒀다. 어느 날 너는 원영이 행한 일에 자신의 자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야, 그때 너도 있었잖아. 기억 안 나?”
  원영이 동조하지 않는 너를 보며 말했다.
  

  기현은 휴게소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푸드 코트에서 돈가스를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았다. 계산은 기현이 했다.
  “오늘은 내가 계산할게. 이거 다 그 새끼한테 청구할 거야.”
  너는 됐다고,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말했다. 기현은 또 선을 긋는다며 늦었으니 빨리 처먹기나 하자고 말했다.
  너와 기현은 주차장 쪽 창가에 앉아 돈가스를 먹었다. 기현이 네게 감옥에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너는 고개를 저었고 기현에게 되물었다.
  “서대문 형무소에 소풍 간 적 있지 않나? 우리 고등학생 때.”
  “거긴 좀 다르지. 교도소가 아니라 유적지라고 하는 게 맞을걸.”
  “그래. 그땐 우린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기현은 네가 말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이번에는 기현의 말에 이견을 보태지 않았다. 또 선을 긋는다며 투덜대는 걸 너는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너는 나와 익산에 있는 교도소 세트장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곳도 진짜 교도소는 아니었다.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는데 높은 담과 철문, 쇠창살, 수감 시설까지 실제와 가깝게 꾸며져서 놀란 기억이 있었다. 쉬는 날 기차를 타고 그곳에 가보자고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내부로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불만을 토로했다. 수감 시설치고는 너무 아늑하다고 했다.
  “나쁜 짓 하고 이런 데서 지낸다고? 살 만하겠네. 수행하는 기분이겠어. 아주. 피해자는 지옥인데, 가해자는 수행을 하네.”
  “혼자 있는 게 아니잖아. 네가 싫어하는 사람들 다 모아놓고 여기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해봐. 지옥 아니겠어? 간수도 있고.”
  “잘못했으니까 책임을 져야지.”
  나는 너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거 같았을까, 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덧붙였다.
  “여긴 죄지은 사람만 오는 감옥이잖아.”
  “갱생이라는 게 있잖아. 그런 걸 하려면 햇빛은 있어야지. 그리고 누명을 쓰거나 억울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넌 그런 걸 생각하더라? 연민이야 뭐야? 왜 그걸 걱정해?”
  “연민이 아니라.”
  너는 서둘러 단어를 골랐다.
  “용서지. 용서.”
  “그건 용서가 아니야. 잔인하고 무책임한 거지.”
  나는 독방을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날 처음으로 너의 진짜 눈빛을 봤다.
  

  기현은 민원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저 멀리 콘크리트 담벼락과 망루가 보였다. 햇볕이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어디에도 그늘은 없었다. 너는 기현을 따라 아스팔트 바닥에 노란색으로 적힌 ‘접견’ 표시를 따라 걸었다. 접견 예약 시각이 임박해서 민원실에 도착했다. 기현은 민원 창구로 걸어가 접견인에 너를 추가했다. 잠시 뒤 모니터에 기현과 너의 이름이 가운데 글자가 비워진 채로 떠올랐다. 접견실 입구 보관함에 휴대전화를 맡긴 뒤에 철문을 통과했다. 교도관은 두 사람의 동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접견 시간은 정확히 10분이었고 민원실과 접견실 사이 벽에는 ‘반성하는 삶의 자세’라는 문구가 붓글씨로 적혀 있었다. 유리 벽 너머에 원영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는데 서너 걸음 뒤에 젊은 교도관이 보였다.
  “오랜만이네.”
  원영이 너를 향해 손바닥을 내보이며 말했다.
  “살 만하냐?”
  너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 늘 솔 톤으로 말하던 원영이 도나 레 정도 되는 높낮이로 말하니 어색했지만 듣기엔 괜찮았다. 네가 보기에 원영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고 수의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지낼 만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오는 길은 괜찮았고?”
  “기현이 차 타고 편하게 왔지, 뭐.”
  “야, 울겠다 울겠어. 시간 얼마 없잖아. 본론부터 해라.”
  기현이 원영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염치가 없어서 그렇지.”
  원영은 기현을 향해 말하고 네 눈치를 살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오면서 얘기는 들었지?”
  “무슨 얘기?”
  “나 여기 온 거.”
  원영은 울음을 삼키듯 어깨를 들썩인 다음 말을 이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부탁 좀 하려고.”
  “부탁?”
  “2심이 얼마 안 남았거든.”
  “다음 달이라며?”
  “어. 3주 뒤야. 그래서 말인데, 반성문을 좀 부탁하려고.”
  “반성문?”
  “업체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게 레퍼토리가 비슷하니까. 재판정에서 잘 안 먹히는 분위기인가봐. 아무래도 내용이 엇비슷하고 그러겠지. 주변에 너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라.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진짜 반성문이 필요하거든. 진심이 느껴지는 거, 절절하고 그런 거.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게.”
  “네 반성문을, 내가 대신 써달라고?”
  “아니, 그건 아니고.”
  원영은 뒤에 앉은 교도관을 의식했다.
  “결혼식에서 축사 써준 거 기억하지? 그거처럼 쓰면 돼. 너 그거 금방 썼다며.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듯이, 미안한 마음을 담는 거지. 당연히 그대로 베껴 쓸 건 아니고 레퍼런스가 좀 필요해.”
  “누구한테 쓰는 건데?”
  “판사지 뭐. 나 진짜 여기서 반성하고 회개하고 있거든. 근데 그걸 글로 쓰려니까, 존나 표현이 안 되는 거야.”
  “좀 못 써도 네가 쓰는 게 낫지 않겠냐?”
  너는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니, 내가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레퍼런스라니까. 참고만 하겠다고. 판사도 사람인데, 맞춤법 틀리고 주술 관계도 엉망이고 맥락도 없는 글이 어디 읽히기나 하겠어. 재판 관련된 자료만 이만큼인데.”
  원영은 손바닥을 머리끝까지 올리며 말했다. 너는 인중을 문질렀다. 당황할 때 하는 동작이었다.
  “친구끼리 좀 그렇긴 한데, 내가 여기 있으니까, 너한테 줄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래도 변호사한테 말해서 장당 7만5천 원은 줘야 한다고 말해놨어. 1.5배.”
  “요즘 A급 시세가 5만 원이라더라. 장당.”
  기현이 원영의 말을 거들었다. 기현은 이미 알았던 눈치였다.
  “야, 내가 돈 때문에 이러겠냐.”
  너는 거절하고 싶었다.
  “알지. 내가 너를 왜 모르겠냐. 우재야, 나는 말이야. 진짜 가해자가 아니야. 그냥 어쩌다 엮인 거지.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라고. 넌 알잖아. 나 정말 억울하다. 억울한데 기부하고 반성해야 나갈 수 있대.”
  너는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원영은 과거 일을 들먹이며 계속해서 간청했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교도관이 그를 끌어냈다.
  

  접견을 마치고 나와서 휴대전화를 찾아 돌아서는데 정장 입은 남자가 너와 기현을 향해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남자는 서류 가방을 든 채로 꼿꼿하게 서서 두 사람을 관찰했다.
  “김기현 씨? 그리고 여기는, 이우재 씨?”
  남자는 기현과 너를 번갈아 바라보며 출석을 체크하듯 호명했다.
  “저는 송원영 씨 변호하고 있고요. 법무법인 남원에서 왔습니다.”
  그는 명함과 함께 클립으로 묶인 종이 석 장을 건넸다.
  “여기 사건 개요 읽어보시고요. 원고는 다음 주 금요일까진데 아무래도 빨리 주실수록 좋습니다. 옮겨 적을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수락한 건 아닌데요.”
  네가 말했다.
  “조건이 나쁘진 않습니다.”
  변호사는 손끝으로 콧방울을 긁적인 다음 너를 보며 말했다.
  “보통은 의뢰인과 일면식 없는 사람이 반성문을 씁니다. 그래서 더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죠. 담백하거든요. 그래도 우리 의뢰인 친구분이 써주신다면 그 나름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많이 써주시면 좋아요. 붙이는 거보다 빼는 게 나으니까요. 우리 의뢰인이 뭐라도 참고하려면 가급적 많은 양의 텍스트를 제공하는 게 좋죠. 워드로 써서 메일로 보내주시면 의뢰인이 손으로 옮겨 적을 겁니다. 윤문을 할 거고요. 당연히 우리 이우재 씨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습니다.”
  너는 변호사가 넘겨준 종이를 구길 듯이 쥐고 있었다. 네 눈치를 살피던 기현은 네 등에 손을 대고 가자고 말했다.
  기현은 너를 민원실 밖으로 먼저 보내놓고 변호사와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왔다.
  “여기, 돼지불백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주소 좀 물어보고 왔어. 그건 내가 살게.”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며 너는 구겨진 종이를 반을 접은 다음 머리 위로 치켜들고 그늘을 만들었다.
  “10분은 너무 짧다.”
  기현이 너를 뒤따르며 말했다.
  “난 길던데.”
  “넌 그런 거 같더라.”
  “그래서 오자고 한 거야? 아르바이트 소개시켜주려고?”
  “조건이 괜찮잖아.”
  “퍽이나 괜찮겠다.”
  “그래. 네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냐. 일단 배나 채우러 가자.”
  변호사가 추천해줬다는 음식점은 교도소에서 30분 거리였다. 2층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외관은 허름해 보였다. 주차장 앞 개집에서 흰 개가 튀어나와 두 사람을 반겼다. 혀를 빼물고 꼬리를 흔들며 한두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주차 자리를 능숙하게 안내했다.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나왔다. 상추와 깻잎, 명이나물과 무생채, 마늘과 고추를 배합하여 쌈을 만들고 입에 넣고 씹는 동안 새로운 쌈을 만들어서 입 안에 욱여넣었다. 너와 기현은 돼지불백 3인분을 시켜 나눠 먹었다. 너는 이따금 가게 밖 평야에 벼가 익어가는 모습을 봤다. 뙤약볕 아래 고라니가 나타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오후 3시, 식사를 마칠 때쯤 한 테이블이 더 들어왔다. 두 사람처럼 접견을 마치고 온 이들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퇴근 시간 전에 도착하려나?”
  네가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기현에게 물었다.
  “과속 딱지를 한 아홉 개쯤 끊으면 될 거 같은데?”
  기현은 생수로 입 안을 헹군 다음 말했다. 마늘 냄새가 지독했다. 기현은 지금 이 상황이 썩 못마땅한 눈치였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계산은 기현이 했다.
  기현이 가게 옆 주차장 끝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너는 두세 걸음 떨어져 커피믹스를 마셨다. 주차장을 겸하는 흙 마당 끝에 서서 고라니가 나타났던 수풀 뒤편을 바라봤다.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위로 무너질 듯한 가옥과 농가를 개축한 펜션, 노출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간격을 두고 섞여 있었다. 너는 그곳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그 길을 따라 세워진 집이 스무 채는 넘어 보였다.
  “이 근처에 골프장이 하나 있거든.”
  기현이 너에게 한 걸음 다가와 말했다.
  “이런 데 숙소를 잡고 노는 거지. 아예 집을 지은 사람도 있고.”
  너는 유튜브에서 봤던 집 가운데 인상 깊게 보았던 집과 유난히 닮은 집 한 채를 골똘히 바라봤다. 민트색 대문과 지붕 위로 솟아오른 나무의 생김새가 낯이 익었다. 이곳 도로명과 풍광이 마냥 낯설지 않은 이유가 이거였나, 너는 생각했다.
  “우재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뭘?”
  “원영이 말이야.”
  너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냥 한 번만 해주면 어때?”
  너는 빈 종이컵을 들고 발끝으로 흙을 약하게 걷어찼다.
  “너한테도 그게 좋을 거 같아.”
  주차장 입구에서 본 흰 개가 멀찍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현은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매장 앞에서 너를 내려주었다. 조수석에서 내린 너는 기현의 차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받는 이는 너였고 보낸 이는 나였다. 상자는 크고 무거웠다. 너는 상자를 들기도 전에 땀을 흘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골목 어귀와 맞은편 건물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키패드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 다음 상자를 들였다. 암흑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너는 현관 앞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늦었네?”
  내가 말했고 공기 중에 목소리가 울리는 게 느껴졌다. 물속에서 소리를 내는 기분이었다. 너는 떨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친구 좀 만나고 왔어.”
  너는 기현을 만나 원영이 있는 교도소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윤색해가며 내게 들려주었다. 말을 하는 동안 너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나는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듣고 있었다.
  “그랬구나. 피곤하겠네.”
  너는 내 목소리가 시작되는 곳을 찾으려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포기하고 식탁에 앉았다.
  “우재야, 이제 내가 얘기할까?”
  “무슨 얘기?”
  “내가 죽은 날.”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인터넷으로 상담받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긴 했는데, 이건 아닌 거 같았어. 사과는 내가 받아야 하는데. 왜 변호사가 돈을 벌고 판사한테 용서를 구해. 심지어 죗값을 제대로 치른다는 보장도 없잖아. 내가 직접 사과를 받겠다는 각오가 선 거지.”
  “그래서 변호사가 널 모른다고 했구나.”
  “맞아. 변호사는 만나지도 않았어. 그 새끼가 일하는 매장으로 찾아갔지. 사과받으면 괜찮아질 거 같았거든. 마침 혼자 있더라. 내 말을 듣고만 있었어. 다 듣고 나더니 자기는 모르겠대. 기억도 안 난대. 지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더라. 모르는 척하는 거겠지.”
  “나쁘네.”
  “나쁘지. 그래서 뺨을 때렸어. 가만히 맞고 있더라. 또 때렸어. 아프기나 했을까. 난 평생 누굴 때려본 적도 없는데. 한 번 더 때렸어. 기껏해야 얼굴이 붉어지는 정도였지. 진짜 고통은 살 안에, 뼛속에 있는데. 그건 모르겠지.”
  “모를 거야.”
  “손은 저릿하고 손목도 욱신거리고 좀 허망하면서도 개운하더라. 이제 됐다 싶었을 때 정신을 잃은 거야.”
  “그때 죽은 거야? 왜?”
  네 말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모르겠어. 여기까지 와서 정신이 들었는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어. 널 만질 수도 없었고 널 부를 수도 없었어.”
  “지금은 어떻게 된 거야?”
  “뭔가 달라진 거 같아. 너는 오늘 어땠어? 이전과 다른 게 있나?”
  너는 익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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