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인천을 만나는 애정 어린 산책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를 완독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참으로 애정이 가득한 책이라는 점이다. 이때의 애정은 첫 번째로 작품 『철도원 삼대』를 향해 있었고, 다음으로는 작가 황석영을 향해 있었으며, 그다음으로는 인천을 향해 있었고, 마지막으로 이 땅에 살다 간 수많은 민초들을 향해 있었다.
그동안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창비, 2020)는 철도 노동자였던 이백만, 이일철·이이철, 이지산 3대와 오늘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공장 노동자 이진오로 이어지는 이씨 집안 4대에 걸친 이야기이며, 이는 곧 한국 산업노동자의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평가되어왔다.1 황석영도 「작가의 말」에서 “나는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하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는 『철도원 삼대』가 지닌 노동소설로서의 뚜렷한 성과 이외에도 인천이라는 공간성을 얼마나 풍부하게 드러낸 작품인가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는 인천을 중심으로 한 공간성에 주목하여 작품을 보다 면밀하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이와 관련해 이 저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1부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지도를 품은 답사 코스’로서, 경인철도를 기준으로 인천의 장소를 1, 2코스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서울 답사 코스와 경의선 코스를 추가했다. 보통의 공력으로는 작성할 수 없는 이 섬세하고 꼼꼼한 지도는 『철도원 삼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철도원 삼대』에서 내용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이철의 투쟁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18장 중에서 4장, 5장, 6장, 7장, 10장, 11장, 12장이 이이철을 중심으로 조선 내에서 이루어진 일제 시기 사회주의 계열의 투쟁활동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국제선, 조선공산당재건위, 경성 트로이카, 국제당, 태로계(태평양노동조합계열), 경성 당재건 그룹 등의 활동이 소개되며, 이재유, 박헌영, 김형선과 같은 거물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제가 저지른 고문이나 밀정密偵의 활동, 그리고 주의자들의 도피 과정 등이 상세하게 진술된다. 이 과정에서 인천이나 영등포 등의 여러 세부 지명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소를 구체적으로 참고하며 작품을 읽는 것과 막연하게 짐작만 하며 읽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낯선 곳의 목적지를 찾을 때,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지도가 없는 것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1부의 지도를 참조하며 『철도원 삼대』를 읽을 때, 비로소 독자는 이 작품이 “일제 시기 국내의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적 항일 투쟁에 대한 재현으로서도 커다란 문학적 의미를 지닌 작품”2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의 2부에는 조성면의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 대하여」와 김경은의 「철도원 삼대, ‘버드낭구집’ 이야기」라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2편의 글 모두 『철도원 삼대』의 고갱이를 짚어낸 매우 유익한 논의들이다. 조성면은 『철도원 삼대』가 “철도를 문학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철도를 통한 한국민중사, 한국노동운동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명실상부한 철도문학이요, 철도 리얼리즘을 구현한 작품”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실제로 『철도원 삼대』가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원고지 2,400장이 넘는 분량으로 담아낸 현대사의 폭과 깊이일 텐데, 이러한 성과는 무엇보다도 근대(성)의 상징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철도를 서사의 중심에 놓은 것과 관련된다. 19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철도는 근대 문명과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인간은 철도와 함께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와 결별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향해 질주”3 했으며, 철도는 근대의 여명을 알리는 전위로서 농업 경제를 산업 시대로 바꾸어놓았던 것이다.4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철도가 자본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능케 했다는 사실이다. 철도는 거대한 건설 계획을 감당할 은행과 금융 체계가 탄생하도록 이끌었으며, 석탄과 철강 산업을 자극하고, 수많은 신생 기업이 태어나는 데 산파 노릇을 했다.5 동시에 철도는 거대한 산업으로서 철도 회사 자체뿐만 아니라 철도 서비스의 성장에 따른 대규모 공급망과 다양한 산업들에서 많은 노동계급을 창출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철도가 부르주아의 세계 정복을 위한 첨병이라고 했듯이, 자본은 철도를 따라 세계를 돌면서 모든 국가들을 자본주의 세계로 재편해갔다.6이처럼 철도는 근대를 둘러싼 모든 가능성과 문제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철도는 “제국주의와 침략의 대명사” 7로 불릴 만큼 식민지 수탈의 주요한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식민지 철도의 레일 위에는 지배받은 자들의 피가 맺혀 있으며, 철도는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강제한 제도적 폭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철도의 이러한 제국주의적 속성은 우리에게도 생생한 상처로 남아 있다. 실로 철도는 엄청난 수준의 과학기술, 자본주의의 발전, 제국주의의 문제 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근대의 상징인 것이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철도가 지닌 이러한 복잡다단한 성격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경은의 「철도원 삼대, ‘버드낭구집’ 이야기」는 『철도원 삼대』의 신화적 측면을 깊이 있게 조망한 글이다. 이 또한 『철도원 삼대』가 성취한 ‘민담 리얼리즘’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안댁이 망구할매나 설문대할망과 같은 우리 전통의 대모신 신화와 연결된다는 주장은 『철도원 삼대』의 중핵과 통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철도원 삼대』는 기본적으로 리얼리즘 소설이지만, 이전의 『손님』(2001), 『바리데기』(2007), 『낯익은 세상』(2011)처럼 환상성이 거의 전면화되어 있다. 이러한 환상의 영역은 주로 여성의 몫으로 주어져 있다.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씨 가문을 지탱해준 것은 이씨 집안으로 시집온 여성들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헌신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현실원칙에는 벗어난 환상적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철도원 삼대』의 문학적 전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황석영이라는 대가가 쓴 장편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이 시대 노동자를 수십 미터 상공 위에 오르게 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철도원 삼대』에는 사회과학적 합법칙성에 부합하는 실천적 전망보다는 끝없이 희망을 제시하는데, 바로 이 희망은 유령이 된 여성들로 인해 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은 이씨 집안의 역사를 온몸으로 지켜본 신금이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진오는 허공에서 신금이 할머니의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고”라는 말을 늘 떠올린다. 이진오가 신금이에게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 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신금이는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이라며,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러한 희망은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작가의 말」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3부는 “살아 있는 문학사”라 이름 붙여진 황석영과 최원식이라는 두 원로가 나누는 지적 향연의 현장 중계에 해당한다. 두 대가는 “민담적 리얼리즘”으로서 『철도원 삼대』가 지니는 문학사적 의미 등을 짚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20세기의 추억부터 21세기 인류의 향방까지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을 추려보자면, 황석영에게 『철도원 삼대』가 “백척간두”에 선 원로 작가의 존재론적 위기에서 한 걸음 더 내딛게 한 작품이라는 것, 사람이나 물류라는 측면에서 영등포와 인천은 옆 동네나 마찬가지였다는 것, 작품 속의 주안댁이 작가가 초등학교 때 가출해서 만난 주안댁과 관련이 된다는 것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문학이 인천과 어울린다며, “나는 인천에서 죽었으면 좋겠어요”라는 고백까지 하고 있다. 8
누군가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가 사라지더라도,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1914)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블린을 다시 건설할 수 있다고 다소 과장되게 말했다. 이것은 「더블린 사람들」에 형상화된 더블린이 그만큼 밀도 있고 정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는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가 인천의 「더블린 사람들」에 해당함을 증명한다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철도원 삼대』도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가 있기에 독자들 사이에서 더욱 환하게 빛난다. 애정으로 가득한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를 통해 한국문학과 인천은 한층 풍요로워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석〉
- 이경재, 「한국현대노동자의 삶과 희망의 근거─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비평의 아포리아』, 강, 2022, 286쪽.
- 위의 글, 297쪽.
- 박천홍,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산처럼, 2003, 5쪽.
- 크리스티안 월마, 『철도의 세계사─철도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았나』, 다시봄, 2019, 333~345쪽.
- 위의 책, 346~351쪽.
- 박천홍, 앞의 책, 75쪽.
- 윤상원, 『동아시아의 전쟁과 철도』, 선인, 2017, 5쪽.
- 『〈철도원 삼대〉와 인천 걷기』의 「부록」에는 『철도원 삼대』에 등장하는 민중의 풍속(음식, 의복, 주택, 생활용품 등)이 정성스러운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부록」에서도 이 땅에 살다 간 이름 없는 민초들을 향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