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신호 혹은 우리의 얼굴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1
윤고은의 장편 『밤의 여행자들』의 주인공 ‘고요나’는 재난이 발생했던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상품인 ‘다크 투어리즘’을 기획하는 여행사의 직원이다. 그는 ‘무이’라는 섬나라의 다크 투어리즘 상품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현장점검의 명목으로 회사의 지원을 받아 그곳으로 휴가를 떠난다. 무이로 가는 다크 투어리즘 상품은 ‘머리사냥’이라고 불리는 부족 간 학살사건의 현장인 사막을 시작으로 부족민들의 삶을 체험하는 며칠 간의 여정으로 구성된다. 요나는 무이의 다크 투어리즘 상품이 그리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 사건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 되었기에, 모험을 바라는 고객들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크 투어리즘을 찾는 관광객들이 원하는 것은 재난에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자신은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이다. 재난을 겪은 이들은 재난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재난을 소비하는 이들은 그것이 반복되기를 바란다. 자신은 결코 그것에 휘말리지 않을 안전한 장소에 서서 말이다.
재난은 단일한 방식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재난이 삶의 장소를 휩쓴 이들에게는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싶은 상처지만, 미디어 등을 통해서 먼 곳에서 관망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에 흥미를 더하는 장면인 경우가 많다. 이는 재난 현장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혔을 때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 윤고은의 소설 속의 다크 투어리즘처럼 재난의 현장을 방문할 때조차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남을 따름이다. 물론 아즈마 히로키처럼 다크 투어리즘이 재난의 이름에 덮인 지역의 삶을 마주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2, 다른 곳의 재난과 나의 삶을 연관시키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기아와 전쟁과 같은 재난적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제한적인 데는 ‘부인Denial’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3 재난과 같은 폭력적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자신이 그 사건에 ‘휘말려’있음4을 이해하는 데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수많은 사회적·문화적·심리적 장벽들이 이를 막아서고 있다. 그렇게 재난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할 때, 폭력과 위협이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며 반복된다. 내가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그 거리까지 말이다.
재난은 가장 가시적인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을 들여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순미의 『다초점 렌즈로서의 재난인문학』(이하 『재난인문학』)은 재난의 본질을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한 렌즈로서 ‘재난인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는 흥미로운 안내서다. 한센병에 대한 문학적 재현과 사회적 기억을 연구해온 국문학자 한순미는 이 책에서 에세이부터 논문을 아우르는 여러 형식을 통해서 재난인문학의 쟁점과 그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풀어놓는다. 그는 재난인문학을 “재난과 인문학의 양변이 직면한 문제들을 동시에 아우르기 위해 잠정적으로 요청한 전략적 개념”5이라고 설명한다. 재난인문학은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다. 『재난인문학』이 여러 아이디어와 사례, 개념들을 풍성하게 풀어놓는 사유의 실타래와 같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 데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개념 안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품기 위함일 것이다. 특히 책의 1장에 수록된 「재난 단상들」이나 「팬데믹 이후 재난인문학」처럼 학술적 글쓰기의 형식에서 벗어나 연속적으로 재난에 대한 사유를 풀어가는 글들은 폭력의 문제를 연구하는 영문학자 제임스 도즈의 『악한 사람들』이 연상된다. 도즈의 책이 보여주듯 폭력에 대한 분석은 때로 인간과 사회의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단면들의 얽힘을 그대로 말해줄 때 더 큰 힘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형식이 교차하는 『재난인문학』의 독특한 구성은 이 책의 주요한 장점 중 하나다.
『재난인문학』이 나열하고 있는 재난의 범위는 다양하다.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코로나 팬데믹부터 한센병, 한국전쟁, 5·18, 세월호 참사, 기후위기까지 아우른다. 이 사건들은 사람과 사회의 삶의 조건을 파괴한 위력적인 폭력이며 쉬이 사라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그 재난적 피해를 제외한다면, 각각의 사건들은 그 원인이나 배경, 경과가 상이하기 때문에 이를 재난인문학이라는 하나의 시선을 통해 조망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엄청난 감염성으로 확대되는 코로나 팬데믹과 전염성이 낮지만, 신체의 훼손으로 끔찍한 ‘낙인Stigma’을 남기는 한센병은 질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뚜렷한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재난인문학자의 시선은 현상의 표면적 차이가 아니라 그 구조의 비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읽어낸다.
한센병의 서사를 격리-낙인-추방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코로나19는 격리-이동-접촉의 서사로 표현할 수 있다. 한센인에게 부여된 “낙인”의 감성과 코로나19 확진자를 심문하는 “이동”의 경로는 공동체의 형상을 다르게 구조화한다. 전염균의 이미지와 표상에 따라 가족, 이웃, 공동체의 관계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89~90쪽)
질병으로 인한 외상이 신체적 낙인이 남은 한센병 환자와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는 코로나19 감염자의 접촉 가능성은 모두 타인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국가에 의한 처벌과 통제의 대상이다. 질병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사회의 반응은 의학과 과학의 문제로 생각되기 쉽지만, 재난인문학의 시선에서는 그 사회의 역사와 현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한센병에 대한 격리가 사회의 우생학적 욕망과 두려움을 반영한다면, 코로나19는 이동을 둘러싼 사회적 분할을 가시화한다. 질병이라는 “재난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사실들을 드러내”(52쪽)보인다.
재난의 기억은 재난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분석 대상 중 하나다. 『재난인문학』에 수록된 글 중에서 몇 편의 학술논문들은 주로 재난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 보게 한다. 재난의 기억은 그 사건이 결코 어느 한 시점에 종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연구는 재난의 극복이 사회 변화를 통해서 가능한 일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재난 기억 연구는 ‘재난인문학’이라는 개념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질문도 던진다. 전쟁이나 국가폭력 등에 대한 문학적 재현이나 구술사 등 기존의 연구와 재난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접근이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지 답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기억을 연구하는 일은 재난의 기억 연구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치유’에 있을지 모른다. 재난은 언제고 다시 반복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재난의 기억은 고통의 기록일 뿐 아니라, 예방과 치유의 기록이기도 하다. 폭력적 사건에 대한 연구가 많은 경우 사실의 증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재난과 그 극복의 과정에 대한 재난인문학의 관심은 상처를 치유하고 이를 더 반복되지 않는 극복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건들을 교차한다. 이러한 기억의 교차를 통해서 치유의 가능성을 찾는 태도야말로 재난인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시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일지 모른다. 한순미의 말처럼 “실천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결국 태도의 문제”(52쪽)이기 때문이다.
주석
-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민음사, 2013, 61쪽.
-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안천 옮김, 리시올, 2020, 57~58쪽.
- 스탠리 코언,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조효제 옮김, 창비, 2009.
- ‘휘말리다’는 일본의 사상가 도미야마 이치로의 개념으로 타인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자신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알 알게하는, “대상을 안다는 행위가 그 대상에 휘말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신체 감각”을 의미한다. 도미야마 이치로, 『시작의 앎』, 심정명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80쪽. 폭력과 재난에 대한 논의들에서는 타인이 경험하는 사건에서 자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강조한다. 책임성에 대한 한나 아렌트와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논의나 죄에 대한 야스퍼스의 논의 등이 대표적이다.
- 한순미, 『다초점 렌즈로서의 재난인문학』, 문학들, 2022, 147쪽. (이후 인용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